박근혜 ‘감성정치’, 대권 거머쥐나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3일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의 故 이춘상 보좌관 빈소를 다시 찾아 아들 경찬 군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이 보좌관은 2일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강원도 유세 수행차량 교통사고로 숨졌다./정대웅 기자
동정여론 통해 보수층 결집+여성표심 자극
문 캠프 “92·97년 대선 떠오른다” 예의주시

지난 2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인 이춘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실 교통사고는 선거기간 중 툭하면 터지는 일상적인 사고지만,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박 후보를 15년 동안 보좌했던 최측근이라는 점과 1992·1997년 대선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끈다.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후보의 ‘감성정치’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 심상치 않게 나온다. 문재인 캠프도 이에 따른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일 강원도 원통에서 춘천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구간. 오후 12시 15분경 카니발 승합차가 도로우측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로 박근혜 후보 최측근 이춘상 보좌관이 사망했다. 박 후보의 인제군 원통장날 방문 일정을 마치고 춘천풍물시장 유세 현장으로 이동하던 중 박 후보 등이 탑승한 앞차를 따라잡기 위해 갓길로 달리다 사고가 났던 것. 사고 후 119구급대가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 보좌관은 이미 맥이 끊긴 상태였다. 사고 차량에 함께 탑승했던 박 후보 캠프 김우동 홍보실장 등 2명은 중태에 빠졌다.

朴, “15년” 워딩 강조 왜?

이 보좌관의 사망은 박 후보에게 큰 충격이었다. 15년 동안 자신을 보좌했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이 보좌관은 이번 대선 경선 및 본선 캠프에서 박 후보의 SNS메시지 관리 등 핵심 역할을 해왔다. 박 후보가 1998년 정치권에 입문했을 때부터 보좌했던 ‘최측근 보좌그룹 4인’ 중 한 명이다.

박 후보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이 보좌관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방문, 이 보좌관 부인의 손을 붙잡고 “정말 죄송하다.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고 울먹였다.

조문을 마친 뒤에는 기자들과 만나 “제가 정치에 처음 입문했을 15년 전부터 서슴없이 헌신적으로 도왔던 보좌관이었다”며 “어려움을 같이 잘 극복해오고 그랬는데 한순간 갑자기 이렇게 떠나게 되니까, 불의의 사고로…. 그 심정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박 후보는 트위터에 “15년 동안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준 이춘상 보좌관!! 이렇게 갑작스런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라며 “그 깨끗하고 맑은 영혼이 하늘에서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며 그 영전에 그동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박 후보의 ‘워딩’에 시선을 모았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 뿐 아니라 트위터에 “15년 동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부모가 모두 흉탄에 쓰러진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가족 같은 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박 후보에 대한 연민의 정, 안타까움이 공존해 대선 앞두고 ‘동정여론’이 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 캠프에서도 이 보좌관 사망 당시 박 후보의 일정을 놓고 의견충돌이 있었다. 박 후보는 이 보좌관의 발인 때까지 아무런 일정을 소화하지 않으려 했던 반면, 핵심인사들은 이를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보수층 결집과 동정여론이 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좌진 정치’에 의존, ‘박근혜 독재’라는 이미지가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전문가는 지난 6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박 후보가 가족과 같은 최측근을 잃은 충격은 박 후보 스스로도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박 후보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동정표를 얻을 수 있다. 더구나 감성정치로 인해 보수층 결집 효과와 함께 여성표심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긴장 중

이 보좌관 사망은 뜻하지 않게 야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의 가족이나 측근들이 작고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 모두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1992년 대선을 1년 4개월여 앞둔 91년 8월, YS 최측근이었던 김동영 전 정무1장관이 3년간의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30년 동안 YS의 곁을 지키며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김 전 장관은 88년말 통일민주당 부총재 시절 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5공 청산과 3당 합당 같은 정치적 격변기를 헤쳐 나갔고, ‘YS 대세론’의 결정적인 밑거름 역할을 했다. 

DJ도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발생한 적 있다. DJ 친동생 대의씨가 대선 하루 전날 사망했다. DJ를 위해 매일 새벽미사를 올리며 불철주야 뛰어다녔던 대의씨는 지병인 간경화에 과로가 겹쳐 10월 쓰러졌다. 숨을 거두기 전 부인과 가족에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임종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유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바 있다.

문재인 캠프 한 관계자는 지난 5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대선에서 최측근이나 가족들이 사망했을 때 당시 모두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다”며 “이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불안감이 캠프 내에서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92년과 97년 대선 때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던 점을 의식한 발언인 셈이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내심 2002년 선거가 재현되길 바라는 눈치다.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 49일 앞두고 부친 홍규옹을 여읜 것. 그러나 그는 아들 병역 비리 의혹으로 인해 대선에서 낙마했다.

이처럼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 보좌관의 사망은 대선 정국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같은 사례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이 보좌관의 사망은 야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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