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에서 체포된 북파공작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그들의 생사 여부와 함께 생존자들은 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관련 ‘HID 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의 한 관계자는 “군사정전위원회(이하 정전위)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82명의 공작원이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직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생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문했지만 죽이지는 않아

실제로 북한당국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북파공작원을 생포한 뒤 처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물론 고문과정에서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하지만 끝까지 버티거나 적대감을 보이지 않으면 목숨은 살려준다는 것이다. 살아남는다해도 이들의 삶이 순탄하지 않다고 한다. 강제수용소에 갇혀 평생을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유족동지회측은 “그들은 생포한 공작원들을 죽이진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죽음 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완전히 개 취급을 당했다는 것이다.이어 유족동지회측은 “북측은 우리 공작원들이 반항하면 얼굴을 둔기로 수십 차례 가격하거나 가슴을 밟고 의자로 내려찍는 등 무자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부패한 사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등 처절히 응징했다는 소문도 들린다”며 북한의 횡포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족동지회의 또다른 한 관계자는 “북한이 비인권적인 만행을 자행해 북파공작원이 처참히 당하고 세상을 등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유족동지회는 그동안 끊임없이 생사확인과 생존자 명단제출을 당국에 요구해 왔다.결국 지난 4일 북에서 체포된 북파공작원 명단이 ‘유족동지회’의 손에 들어왔고 새삼 북파공작원 문제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유족동지회는 정전위에 북파공작원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를 요구했고 정전위가 1만 3,000여장의 본회의록을 보내와 명단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회의록이 모두 영문으로 돼 있어 아직 모든 사항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일단 지금까지 파악된 내용에 의하면 생사여부 이외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회의록 내용 ‘관심증폭’

일례로 그동안 북파공작원 중에는 미성년자는 없었다는 것이 정부당국의 설명이었다.하지만 정전위 자료에는 남측에서 보낸 북파공작원 중에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정전위에서 북한당국은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남측에 적나라하게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1952년부터 1972년까지 남한이 북한지역에 보낸 북파공작원 중 미성년자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사자의 나이는 당시 19살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당국은 정전위에서 ‘어떻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미성년자까지 파견하냐’, ‘남한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냐’, ‘박정희란 X이 시킨 짓이냐’는 등 비난을 퍼부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성년자도 공작원으로 북파

실제로 유족동지회 관계자가 북한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는 과정에서도 이같은 비난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북정부 관계자와 비공식적으로 접촉했다는 유족동지회의 한 인사는 그들로부터 “현재 북에 생포돼 있는 무장공작원들은 대체 어느 나라에서 교육시켜 보낸 애들이냐”는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대꾸를 못하자 북측 관계자는 “남한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나라”라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한편 정전위 회의록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담겨 있어 ‘유족동지회’ 관계자들을 울리고 있다. 북한당국에 의해 생포된 북파공작원이 고통을 견디며 남한에 있는 동생을 그리워하며 쓴 서신이 발견된 것이다. 이 서신은 북한당국에 생포된 북파공작원들이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음을 암시하고 있어 ‘유족 동지회’ 관계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는 후문이다.따라서 유족동지회측은 정부를 향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족동지회측은 “국가의 냉대와 무관심 때문에 벌어진 사태”라며 “그들의 생사여부 등에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보였더라면 북측이 이렇게 ‘막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며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 HID 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 하태준 회장 미니인터뷰 “정부는 이들의 송환에 적극 나서야”


HID 북파공작원 유족동지회 하태준 회장은 3월 4일 피포된 41명의 북파공작원들의 명단에 이어 7일 또 다른 41명의 북파공작원 생존자 명단이 공개된 후, 기자를 만나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하 회장은 북파공작원에 대한 생존설을 묻는 질문에 “군사정전위원회로부터 당시 사실관계가 기록되어 있는 1만 3,000여장 분량의 본회의록 자료를 받아 직접 명단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자료가 영문으로 기록, 아직 한글로 번역이 안 된 탓에 정리하는데 골머리를 앓는 중”이라고 다소 속사정을 털어놨다.

하 회장은 “북한은 41명의 북파공작원을 체포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들 중 34명은 북파공작원 전사자 명단과 같았다”며 “특히 몇몇 전사자는 유족들이 증언한 신상명세까지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전위 회의록이 공개된다면 훨씬 더 많은 북파공작원 생포자 명단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전위 회의록의 추가 공개를 아울러 촉구했다. 하 회장은 “이번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파공작원 중 생포자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이들이 송환될 수 있도록 북한과 적극 교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하 회장은 “6·15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은 이미 67명의 남파공작원을 인정했는데 우리 정부가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절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조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생포 후 고문받아 사망한 안병기 요원 육필서신 입수 공개

북에 체포된 북파공작원들의 뒤처리가 매우 처참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정전위 자료에 의해 밝혀진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이 있어 관심을 끈다. 생포된 이후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안병기 요원의 육필서신이 그것. 다음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남동생을 돌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북파돼 생포된 안병기 요원이 임무수행 중 남녘땅에 혼자 있는 동생을 걱정하며 쓴 글이다. 저 산 너머 지는 태양이여,너마저 부모님과 동생들이 있는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는구나.어릴 적 부모님 여의고, 아버지처럼 날 믿고 의지했던 내 동생아!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니?형은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이 일이 끝나면 사랑하는 내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한 생각을 떠올려본다.- 북파공작원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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