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용 금융부문 공약의 실체


박 후보 “금융위 강화” vs 문 후보 “금융위 축소”
금감원, 건전성 감독ㆍ소비자 보호…쌍봉형 분리 위기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대선 주자들이 모두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금융부 신설ㆍ금감원 분리 등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모두 통합형 금융감독체계보다는 분리ㆍ이원형 체계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박 후보는 금융위에 힘을 실어주고 문 후보는 금융위의 힘을 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현행 감독체계는 금융위가 국내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갖고 있으며 금감원이 실제 금융감독을 집행하고 있다.
이에 박 후보 진영에서는 현재 금융위의 국내금융정책에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정책을 합해 금융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금감원을 금융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로 이원화시키는 ‘쌍봉형(twin peaks)’ 모델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박 후보 측 방안에 따르면 금융위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면서 금감원은 둘로 쪼개져 분리된다.

반면 문 후보 진영은 금융위의 금융정책을 기획재정부가 가져가고 감독은 타 협의체가 가져가는 방안을 내놨다. 사실상 금융위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역점으로 삼아 금감원 외부에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 설치, 금감원 내 소비자위원회 혹은 전담부서 도입, 금감원 쌍봉형 분리 등 여러 방안을 두고 검토 중이다. 문 후보 측 방안을 보면 금융위가 해체되고 금감원은 유지 혹은 분리되는 방식이다.

정책과 감독 분리 필요성
 
이를 두고 정관계는 물론 학계까지 가세해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금융공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10일 공동 주최한 ‘지속 경제성장을 위한 금융의 역할과 정책 방향’ 정책심포지엄에서는 현행 금융감독체계를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책 기능은 정부 조직으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만 금융위와 금감원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홍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현행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은 서로 상충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현 상황에서는 어느 한 쪽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금융감독과 금융정책을 분리하고 금융정책은 특정한 정부부처에 통합해 귀속시키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에서 담당하고 금융감독을 금융위가 전담해 금감원이 이를 보좌하는 형태로 감독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김 교수는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통합형 감독 기구 내 독립 소비자보호 기구를 설립해 독립성을 확보하면서도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방안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금융감독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중복 검사, 책임 회피 등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 및 금융안전위원회를 설치해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적 의사 결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면서 “금융소비자원이 금융감독 및 금융안정위원회를 통해 법안 심사권, 징계요구권을 행사하는 등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원 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금감원 제 밥그릇 챙기기 바빠

금융당국은 해당 기구의 존폐와 이원화가 걸린 만큼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는 해체론을 일축하며 독립적인 금융위의 존속을 외치고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분리가 아닌 통합형 금감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식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7일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향후 10년 후를 내다보는 금융감독체계 개편방향’ 심포지엄에서 “금융감독은 전형적인 공권력적 행정이며 헌법은 공권력적 행정에 대해 행정부가 직접 수행토록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정업무는 대통령과 국회의 통제를 받으며 견제와 균형이 적절히 이뤄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김 위원장은 같은 달 6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주최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심포지엄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금융행정기능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위기대응에 가장 이상적”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독립적 금융행정기구인 금융위원회가 있어 좀 더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달 6일 보험개발원이 주최한 ‘보험사 최고경영자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쌍봉형 금융감독체계는 호주와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만 선택한 제도로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라며 “이들 나라에서 오히려 기관들 사이의 알력과 비협조, 중복감독 등으로 업무의 비효율성이 발생했고 감독 부실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례가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권 원장은 “지금은 금융회사를 제대로 감독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때”라며 “감독체계 개편에 일일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금감원 분리에 대한 반대 의견을 확고히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각 후보들이 금융부문에 대해 치열한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공약을 내걸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계 관계자는 “금융부 신설ㆍ금감원 분리 등은 단지 대선용 공약으로만 그칠 수도 있다”면서 “역대 대선 때마다 금융부문에 대한 공약이 쏟아져 나왔지만 실제로 이뤄진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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