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금 조달 적신호 켜져

안 팔리는 항공사들, 회사채 시장서 인기 추락… 왜?
해운사들, 회사채도 모자라 유상증자에 경영권 매각까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항공업계와 해운업계가 연속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그 배경과 향방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특히 항공업계의 경우 한 해 동안 잇달아 세 차례씩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미매각으로 잔류하는 물량도 나날이 쌓이고 있다. 해운업계 역시 잦은 회사채 발행은 물론 유상증자와 매각까지 시도하며 유동성 위기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형국이다.
 
항공업계의 돈줄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다. 먼저 대한항공(회장 조양호)이 지난 한 해 동안 발행한 회사채는 1조5000억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13일 30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대한항공은 이미 수요예측에서 대량 미달을 예감했다. 발행 예정액 3000억 원 중 기관 수요가 440억 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0월 같은 규모로 발행한 회사채 3000억 원 중 2000억 원이 아직 미매각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두 달 만에 회사채를 발행한 결과다.
 
아시아나항공(사장 윤영두)의 미달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지난 12일 발행한 회사채 1000억 원은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달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 10월에 발행한 회사채 1000억 원 역시 600~700억 원이 미매각으로 잔류 중이다. 추가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번에도 대규모 미매각으로 이미지가 실추될 전망이다.
  
차입금ㆍ부채비율 高高… 쌓이는 미매각 물량

특히 대한항공의 경우 지나친 차입금과 높은 부채비율이 미매각의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됐다. 대한항공의 총차입금은 지난 9월말 기준 13조5898억 원이며 같은 시점 부채비율은 817.5%다. 연말 회사채 시장이 위축된 상태에서 남은 미매각 물량에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회사채를 발행한 것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항공이 회사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계속해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투자 확대의 일환으로 고가의 신규 항공기를 연속해서 구입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 리스로 사들인 항공기만도 26대에 이르며 계약대로라면 향후 80억 달러가 추가로 더 필요하다.
 
또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 자금 마련도 부담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KAI의 예상 인수가는 1조2000억~1조5000억 원이며 매각 본입찰은 제18대 대선 이틀 전인 17일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이나 부채비율도 대한항공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시아나 항공의 총차입금은 같은 시점 3조 원 가량, 부채비율도 500%가 넘는다. 게다가 아시아나항공은 계속해서 금호아시아나그룹(회장 박삼구) 재무구조개선의 그늘에 서 있다. 자율협약 역시 부채비율 및 경영목표 기준 미달 등으로 내년 말까지 연장될 전망이다.
  
끝날 줄 모르는 업황 부진… 자금 마련에 전력투구

해운업계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현대상선(부회장 이석희)이 한 해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발행한 회사채는 총 8000억 원 규모다. 현대상선은 지난해에도 58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2010년에는 7100억 원, 2009년에는 1조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진해운(회장 최은영)도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8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7000억 원, 2010년 5700억 원, 2009년 75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렇듯 해운업계 최상위권 기업들이 최근 3~4년간 집중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2008년부터 심화된 해운업황의 부진이다. 업계 전망치가 계속해서 ‘흐림’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차입금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실적도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상반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각각 4569억 원, 339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해운업계의 업황 개선이 경기 부양 여부와는 별도의 난제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선박량이 급증했지만 물동량은 이를 받쳐주지 못해 운임이 지속적으로 약세를 띠고 있어서다. 또한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기존에 발주한 선박대금 확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회사채만으로는 부족… 유상증자ㆍ경영권 매각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회사채 발행뿐 아니라 유상증자 카드도 나왔다. 현대상선은 지난 10월 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지난 12일까지 청약을 진행했다. 한진해운도 지난해에 이어 최근 유상증자를 검토했으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아예 해당 계열사 매각으로 돌아선 경우도 있다. STX그룹(회장 강덕수)이 자금사정 악화로 STX팬오션(사장 배선령) 매각을 검토 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STX팬오션은 “STX그룹의 사업구조 개편과 재무구조 개선 방안의 일환으로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지난 12일 밝혔다.

앞서 STX그룹은 유동성 문제로 인해 지난 6일 3600억 원 규모의 STX에너지 지분 매각을 끝냈고, 유럽 조선 자회사인 STX OSV 매각도 추진 중이다. STX팬오션의 경우 STX그룹이 보유한 지분은 3000억 원대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2조 원대의 가격까지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STX그룹과 STX팬오션의 재무 상황을 고려할 때 매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편 회사채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지난 두 달간 증권사들이 떠안은 미매각 회사채 물량이 총 2조 원에 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웅진그룹 사태가 터진 지난 9월 말 이후 A등급 회사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탓이 크다. 특히 내년에는 총 20조 원 규모의 A등급 이하 회사채의 만기 도래가 집중되면서 차환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회사채 신용등급 AA등급 이상을 제외한 A등급 이하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회사채 시장 경색을 풀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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