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입양인들의 국내 핏줄찾기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한국계 미국 입양인 토비 도슨(28)의 친부모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더불어 해외 입양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해외입양인들의 모국과 혈육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이용해 “친부모를 찾아 주겠다”고 자청, 환심을 산 후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지난 21일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는 해외 입양아에게 국내의 친아버지를 찾아주겠다고 속여 돈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신모(남·38)씨를 구속했다.

생계 어려워 사기행각

경찰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신씨는 1973년 주한미군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지난 2000년 4월에 귀국했다. 이후 수년째 마땅한 직업도 없이 생활하던 신씨는 일정한 소득이 없자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보려고도 했지만 장기간 해외생활을 한데다가 사업수완이 없는 그에게 좀처럼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신씨는 우연히 모 언론사 인터넷 게시판에서 해외 입양인 이모(34·여)씨를 알게 된다. 이씨는 태어나자마자 영국인에게 해외 입양돼 현재 홍콩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 어려서부터 자신이 외국인들과 외모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과 자괴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자신의 출신에 수치심을 느끼고 혼란에 빠졌다는 것. 사춘기 이후 서서히 자신을 버렸던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현지에 있는 한글학교(한인학교) 등을 찾아 한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적절한 자료가 없었다. 게다가 한글학교를 찾는 동포들은 자기자식이 입양아들과 섞이는 것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 입양아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도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이씨는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그녀는 한동안 친부모를 찾는 걸 체념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던 이씨가 친부모를 찾기 위해 다시 발 벗고 나선 것은 최근 한국에서 토비 도슨이 유명세를 떨치면서부터다.

너나할 것 없이 ‘내가 부모’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쏟아지자 자신도 잘하면 이러한 추세에 따라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겠거니 생각한 것. 그래서 그녀는 입양아들이 모이는 사이트마다 자신의 사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름, 성별, 생년월일, 입양기관, 입양날짜, 입양국가 등을 적고, 기타 세부사항을 적어서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나 이씨가 올린 글에 담당자는 ‘찾아보겠다’는 의례적인 답글만 올릴 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너도나도 애타게 부모를 찾는 사연이 봇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국과 친부모를 그리워하는 이씨는 부모를 찾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태세였다. 이를 눈치 챈 신씨에게 이씨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30여 년간 해외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영어밖에 없었던 신씨는 자신의 영어실력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친부모를 간절히 찾고 있는 이씨를 상대로 크게 한탕 할 계획을 세운 것.신씨는 이씨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녀가 동질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비슷한 입장에 놓이게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였다. 이에 신씨는 처음부터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속이기로 마음먹었다. 웬만한 말로 이씨의 환심을 사기에는 역부족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나도 해외 입양아 출신인데 다른 해외 입양아에게도 친부모를 찾아준 경험이 많이 있다”는 말로 이씨의 관심을 끌었다. 신씨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친부모를 찾아준 사례가 많다’는 신씨의 말에 이씨는 신씨를 거의 맹목적으로 의지했다.

메일 통해 신뢰 구축

짧은 시간 메일을 통해 신뢰와 친분을 쌓는데 성공한 신씨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래의 목적대로 돈을 요구한 것. 신씨는 “한국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착수금이 필요하다”며 이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이씨는 당장에 친부모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선뜻 돈을 부쳤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신씨는 “아버지를 찾을 기미가 보인다”며 이번엔 유전자 검사비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돈을 뜯어냈다. 신씨는 이씨를 안심시켜 확실히 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서류들을 허위로 조작하여 이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자료와 문서를 본 이씨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결국 그는 신씨에게 유전자 검사비 수천달러를 보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씨가 신씨에게 보낸 돈은 모두 3,00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0여 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입양관련 사이트 조심해야

그러나 얼마 후 이씨에게 돌아온 것은 간절히 찾던 친아버지가 아닌 자신을 농락한 한 인간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과 좌절뿐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 담당자는 “이씨는 수차례 친부모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래서 자신을 선뜻 도와주겠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신씨를 더욱 무조건적으로 믿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넓히고 있다”며 “실제로 최근 해외입양 사이트 게시판에는 친부모를 찾아달라는 사연과 함께 그에 따른 피해 사례도 속속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해외 입양아 상대의 사기가 이번에 적발된 만큼 가족을 찾을 때는 개인이 아닌 공인된 기관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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