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난자매매’ 논란이 아직 식지 않은 가운데 이번엔 ‘불법 해외 장기매매’로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장기이식을 위해 중국으로 원정 가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는 것. 문제는 이들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중국을 찾는다는 데 있다. 국내 의료진으로부터 장기이식 불가 판정을 받고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원정을 선택하는 환자들도 상당수에 달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휴~이렇게 환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중국으로 장기이식수술을 하러 가는데 소위 말하는 ‘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별도로 관리하는 조직까지 있습디다.” 불법 해외 장기매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마포경찰서를 찾은 기자에게 경찰이 던진 첫마디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사건의 전말을 얘기했다.

환자 3명에게 1억8천만원 챙겨

지난 5일. 중국의 사형수나 뇌사자 등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한 뒤 국내 환자들에게 이식수술을 알선해 온 업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2003년 9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암 환자 3명에게 1억 8,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 “인터넷 카페 회원수가 5,000여 명이 넘더라고요. 장기매매 관련 사이트 치곤 엄청난 규모죠. 중국원정수술과 관련해서 활발한 문의가 오고 간 점 등으로 보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례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부작용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반응도 가지가지다. 후유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경찰은 환자들 유형을 ‘네탓이다’, ‘내탓이다’로 분류해 기자에게 설명했다. 이들의 사연은 무엇일까.“없는 살림에 집까지 팔아서 받은 이식수술인데 오히려 더 악화됐어요. 사람 죽으면 그만이란 말입니까? 목숨 갖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A씨는 지난 2003년 간암 말기 판정으로 국내 병원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이고 ‘최후의 날’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즈음 우연히 ‘장기매매’ 사이트를 알게 됐다. 중국 최고의 의료진과 그럴듯한 병원 소개, 중국에 가면 보다 쉽게 이식을 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게시물은 A씨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사람 목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가족의 격려에 집까지 팔아 중국원정수술을 결심했다. 당장은 염치없었지만 살아서, 꼭 살아서 가족을 책임지고 싶었던 것이다.“처음엔 4,500만원이면 충분히 좋은 간을 이식시켜 준다고 하더니 중국 가니까 말을 싹 바꾸더라고요. 추가비(식사, 통역, 간병비 등)로만 총 3,000만원 이상 들었어요. 좀 늦어지면 빨리 보내라고 재촉하고 좀 따지고 들면 중국 땅에서 나하나 어떻게 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협박하고…” 이렇게 말하는 A씨는 그동안 브로커에게 당한 것을 탓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과가 어찌됐건 자신의 선택이었다며 ‘내탓이요’를 외치는 환자도 적지 않다.

막대한 외화유출 우려돼

“죽음의 문턱 앞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하루라도 더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희망인지… 살아있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조금 있다 하더라도 저한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국원정을 통해 간을 이식 받은 B씨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선택이었다 치지만 좋은 간을 이식받았다면 충분히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B씨는 그건 ‘꿈같은 얘기’라며 고개를 절레 흔든다. “지난 3년 사이 국내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죽은 환자가 650여 명에 달한다더군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기증된 장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인데 하물며 저 같은 노인네한테 기증될 장기를 바라는 건 솔직히 ‘하늘의 별 따기’죠….” B씨는 국내에서 찾을 수 없었던 삶의 희망을 오히려 중국에서 찾았다는 입장이었다.

이어 B씨는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나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찰은 B씨의 말이 무모한 것 같지만 이것이 ‘국내 현실’이라고 말한다. “중국원정이 불법이다, 부작용이 많다, 어차피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등 좋지 않은 소문만 무성하지만 그들은 단 1%의 가능성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거죠.” 하지만 중국원정 장기이식 수술이 모두 불법은 아니다. 일부 알선 업체 등은 환자의 진료차트를 중국으로 보내 신중하게 검토한 후 수술 여부를 판단하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수술비는 중국 내국인보다 5배 가량 비싼 실정이다.

한 알선업체 관계자는 “환자마다 비용이 각각 다르지만 수술비 4,500만원에 식사, 통역비 등 매 달 5,00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며 “사실상 막대한 외화 유출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불법 장기매매의 유혹에 빠지고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생각해 볼 때 합법적인 국내 장기기증이 활성화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공여자들의 수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장기 질환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오프라인 불법 장기매매 요지경장기팔면 돈 번다?… 브로커 활개

온라인만 못하지만 암암리에 오프라인 상으로도 불법 장기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을 통한 소문과 역, 터미널, 병원 화장실 등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장기 사고 팝니다’라는 문구. 알선업자들은 절박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매매를 주선하겠다고 한 뒤 조직검사비만 챙겨 달아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2004년 12월 사업하느라 돈이 급하게 필요했던 김모씨는 지하철 공중 화장실을 찾았다가 장기 기증자를 찾는다는 스티커를 발견했다.

신장이나 간은 몇 천 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만 믿고 조직검사 비용으로 160여 만원을 입금했지만 브로커는 돈을 받고 나자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11월 부산에서는 비슷한 수법으로 150여명에게서 검진비 2억여원을 챙긴 브로커가 붙잡혔다. 또 지난 3월에는 장기를 팔면 많게는 7,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해 불과 1년도 채 안돼 100여명 이상에게 수수료만 9,000여만원을 챙긴 브로커 박모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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