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제전화 서비스. 이는 자동 콜렉트콜(수신자부담)로 받는 쪽이 비용을 부담하는 서비스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수신자 부담전화 이용시 별도의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안내방송에 따라 국가별 접속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그러나 사전에 이용료 안내방송이 없다는 것이 흠이다. 단지 ‘전화를 받으려면 아무 버튼이나 누르세요’라는 안내뿐이다. 이러한 국제전화 서비스의 ‘허점’ 문제로 최근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휴대폰에 ‘생소한’ 번호가 뜨면 호기심에 버튼을 누르는 것이 대다수 휴대폰 이용자들의 통화패턴이다 보니 이 같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달 동안 전화요금이 2,500만원 나왔다. 수십 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 겨우 마련한 전셋집이라도 팔아야 할 지경이다.”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을 판에 이른 박모(46·충북 증평)씨. 걱정이 태산이다.

박모군 국제전화비 2,500만원

지난 26일. 고등학교 2학년인 박씨의 아들 박군(17)이 휴대전화로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2,500만원어치나 사용해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날 지경에 처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온세통신 관계자에 따르면 박군은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한 채팅사이트를 통해 중국 유학 중인 유모(21)씨를 알게 됐다. 이들의 통화시간은 하루 평균 3~4시간. 길게는 12시간 동안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데이트’를 즐겼다. 주로 재미있는 이야기나 엽기, 책 등에 대한 것이 전화의 주된 내용. 이 때문에 10월분 전화요금으로 무려 1,52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용료가 청구됐다. 11월 요금까지 합치면 2,500만원을 물어야 할 형편이다.

박군의 집은 생활보호대상가구로 어머니는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다. 환경미화원인 아버지가 버는 돈 100만원과 생활보호대상자 보조금을 합해 150만원 남짓한 돈이 수입의 전부다. 가족 6명이 생계를 유지하기엔 너무도 빠듯한 액수다. 이에 박군은 어려서부터 생활이 넉넉지 못했고 부모님 사랑 또한 듬뿍 받고 자라지 못했다.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는 유씨에게 끌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메신저를 통해 만나 얘기하다 보니 모성애를 느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박군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온세통신 관계자는 “국제전화수신자인 박군이 피해자로 여겨져 내부적으로 대책회의를 거쳐 구체적으로 구제방법을 논의해 보겠다”며 “현재 정확한 사용 액수 등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금을 감면해 준다고 난 기사는 오보”라며 아직 ‘검토 중’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과도한 요금으로 이혼 위기

2,500만원이란 천문학적인 전화요금 부과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바로 3일 후인 29일.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박모(40)씨는 철없는 조카 A(21)씨 때문에 이혼 위기에 처했다. 무분별하게 국제전화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전화요금을 물게 된 것. “지난 달 514만원, 이번 달 613만원, 다음 달까지 합친 전화요금이 무려 1,500만원 나왔다.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며 박씨는 울분을 토했다.B통신 관계자에 따르면 친정조카 A씨는 박씨 집에 얹혀산다. A씨의 여자친구는 지난 9월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다. A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여자친구와 통화했다. 매일 평균 10통화씩, 한번 걸면 20~30분씩 통화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전화기만 붙들고 사는 조카를 볼 때마다 박씨는 못마땅했지만 간섭하진 않았다. A씨가 국제전화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터다. 그러던 24일 박씨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전화요금 청구서를 보게 된다. ‘15’라는 숫자 뒤에 6개의 ‘0’. 박씨는 처음에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씨의 재산이래야 영구 임대아파트 보증금 1,300만원이 전부였다. 1,500만원이라는 전화요금은 막지도 못할 뿐더러 막고 싶지도 않은 것이 박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렇게 큰 돈이 어디서 굴러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매달 갚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리다. 부부싸움 끝에 이혼(수속)한 상태다.”

‘사전통보’ 시스템 필요

B통신 관계자는 막대한 요금으로 인해 이혼까지 이르게 된 것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요금을 쓴 것은 사실 아니냐”며 “구제방법이 없다”고 못 박았다. 개개인의 이런 저런 사정을 다 봐주는 것은 부당조치라는 것. 지금으로선 통신업체에 ‘분할 납부’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제전화를 한 당사자와 이를 방치한 부모의 책임도 있지만 일정 금액의 국제전화 통화요금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또한 전화요금이 갑자기 많이 나올 경우 사전에 통보해 엉뚱한 피해를 막는 통신회사의 적극적인 자세가 시급하다고 소비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B통신 관계자는 “사용 요금을 제한하는 상품은 있으나 수신자부담의 경우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며 조속한 대책 마련에 공감했다.

# 전화정보이용료 피해 속출나도 모르는 요금내역 ‘울화통’

정보통신부가 10월 26일 발표한 ’05년 3/4분기 통신민원 처리 결과, 전체 민원 가운데 ‘요금과다 청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가서비스 무단가입과 사용하지 않은 통신요금 및 요금체계 사전 미고지 등이 그것. 실제로 지난 7월 C씨는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하면서 한 달간 특정 부가서비스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요금 청구서에는 신청하지 않은 2종류의 부가서비스까지 요금이 더 청구돼 있었다. 대리점에 항의했지만 대리점 측은 가입 당시 설명했고 계약서에도 기재돼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C씨는 계약서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무료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유료로 전환된 사실을 모르고 계속 요금이 납부된 사례도 많았다. 통신사가 유료전환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거나 문자메시지만 보낸 뒤 별도 동의 없이 요금을 청구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경마, 경매 정보 등 060전화정보 서비스 사업자들이 이용자에게 과다한 요금을 부과해 피해를 입었다는 민원사례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에 통신위는 “무료로 제공되는 060서비스는 거의 없다. 사전에 요금안내가 되지 않은 서비스는 사기”라며 주의를 요했다. 또 “요금청구서를 꼼꼼히 확인해 부당한 요금이 부과되었을 경우, 해당요금의 환불 등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며 “청구된 요금 등에 문제가 있을 경우 청구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이의신청을 해야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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