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큰길가의 어느 건물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이 남성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들어간 곳은 바로 성인용품점. 업소 간판에는 ‘각종 성인용품 판매’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마치 무슨 첩보영화를 찍는 듯한 장면이지만 사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장인수(42·가명)씨가 성인용품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7월. 직장동료와 술을 한 잔 걸친 후였다.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으니 따라오라”며 직장동료가 김씨를 데리고 간 곳은 사무실 근처에 있는 L성인용품점.

“맨정신으로는 낯뜨거워…”

하도 신기한 물건들이 많다고 해서 술김에 따라 들어갔는데…들어간 순간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는 장씨는 “맨 정신이었다면 낯 뜨거워서 발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애들도 아니고 이 나이에 주책맞아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중년 남자 손님들이 상당히 많다는 주인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성수동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성인용품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성인용품을 이용한다고 해서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변태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성인용품은 처음에는 장애인이나 정상적으로 성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됐다. 따라서 성인용품을 성생활에 집착하는 별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성인용품은 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보조기구로 생각하면 무난하다”고 설명했다.매장 주인에 따르면 성인용품점에 있는 제품들은 크게 일곱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남성 자위용품, 여성 자위용품, SM(새디즘,마조히즘)용품, 콘돔, 속옷, 젤, 성보조용품 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구매가능한 성인용품은 약 700~800여종에 이르는데, 일반적인 성인용품점에서는 대략 300여종의 상품을 비치해놓고 있다. 개중에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깜짝놀랄’ 물건들도 있다.그 날 직장동료가 이런저런 물건을 사는 것에 휩쓸려 얼떨결에 간단한 자위기구 하나를 구입한 장씨. 놀랍게도 그날 이후로 그는 그곳을 세 번이나 더 찾았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장씨가 성인용품점을 찾을 때마다 늘 술을 마시고 간다는 점이다. “첫 테이프를 술을 마시고 끊은 탓인지 그 이후에도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그곳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그는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성인용품점에 자연스럽게 드나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요지경 손님백태

성인용품을 구매하는 방식은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다. 20대에서 30대 초중반의 젊은층들은 주로 인터넷으로 성인용품을 구입하는 반면,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30대 후반 이상의 이른바 ‘쉰세대’들은 직접 매장을 찾곤 한다. 서울 사가정역 인근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박모씨에 따르면 성인용품점을 찾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선글래스와 모자 등으로 최대한 얼굴을 가린 ‘완전 무장형’에서부터 매장의 모든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는 ‘신중형’, 하나하나 설명을 요구하며 호기심을 나타내는 ‘적극형’까지 다양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그는 얼마 전 매장을 찾아온 한 손님 때문에 웃지못할 경험을 했다.

새벽 5시 무렵 영업을 끝낸 박씨는 2층에 자리잡은 매장 문을 닫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던 중이었다. 순간 뒤에서 갑자기 한 사나이가 박씨를 향해 뛰어들면서 그의 팔을 낚아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래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건장한 체형의 사내였다. 순간 ‘강도구나’ 생각한 김씨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며 눈앞이 캄캄했졌다고 한다. 그러나 “들어갈 엄두가 안나서 여태까지 밖에서 망설였다. 지금 바로 사야할 물건이 있다. 미안하지만 문 좀 다시 열어줄 수 없냐”는 그 사내의 말에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고 전했다.박씨는 “마스크까지 써서 완전 무장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모자나 선글래스를 착용하는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성인용품점에 드나드는 것이 쑥스럽다는 생각에 얼굴이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독신의 증가, 점차 늦어지는 혼인연령, 일본문화의 영향 등으로 성인용품을 찾는 사람 수는 확실히 증가했지만, 우리나라의 정서상 처음에는 매장에 발을 들이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그는 “젊은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매장에 들어와서 물품들을 구경하거나 일일이 설명을 요구한 뒤 구입해 가곤 한다. 커플이나 부부끼리 오는 경우도 있다. 또 처음에는 필요한 물품만 사서 황급히 돌아가던 손님이 다양한 물품에 관심을 보이거나, 아예 단골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끼리 커플끼리…아예 단골도

얼마 전에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매장에 들어와 다른 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휴대폰으로 어딘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1분도 채 안 돼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고 물건을 고른 두 사람은 재빨리 계산하고 나갔다. 이른바 ‘007작전형’이었던 셈. 박씨는 “매장에 손님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이와는 반대로 매장에 진열된 모든 기구를 꼼꼼히 들여다보느라 제품을 고르는데 1시간 이상씩 걸리는 손님들도 있다. 두 달에 한번 꼴로 매장을 찾는 한 남성은 원하는 제품을 고르는데 보통 두 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는 것이다. 박씨는 “여기 저기 뜯어보고 살펴보며 한 제품을 두고 20~30분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하여튼 보통 신중하게 고르는 것이 아니다. 성인용품을 고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오직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또 주인을 붙잡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 질문형도 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물품이나, 신기한 물품, 신제품이 들어왔을 때 그들의 호기심은 폭발한다. 그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용도부터 사용방법, 사용후기 등 질문이 끝도 없다.

심지어 부작용(?)까지 일일이 붙잡고 물어보는데 정말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웃었다.재미있는 것은 여자손님의 경우 두명 이상이 함께 방문하는 경우에는 구매하러 왔다기보다는 호기심 차원에서 방문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남성의 경우에는 비아그라나 흥분제를 구해달라고 하는 문의가 많고, 여성의 경우에는 포로노 테이프를 구해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한다.

매장은 구석에, 내부는 산뜻하게

성인용품점의 재미있는 공통점 중 하나는 1층 매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남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때문에 1층에 매장을 열 경우 99%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이 매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성인용품 매장으로 적격인 곳은 건물의 2층인데, 특히 사람들의 발길이나 이동이 많지 않은 곳이 최적의 장소다. 박씨는 “사람들이 자주 왔다갔다 하는 화장실이나 계단, 엘리베이터에서 되도록 먼 곳이 좋다. 코너를 돌아서 있는 구석자리면 금상첨화”라고 귀띔했다.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듯 성인용품점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과거 성인용품점은 매장내부에 빨간색 전등이나 촛불을 사용한 조명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으나, 최근에는 밝은 조명이나 투명한 유리 진열대를 사용, 환하고 산뜻한 이미지로 인테리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매장 자체는 사람들의 시선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곳이 최적이지만, 정작 매장 내부는 일반 매장과 같아야 한다. 무슨 못 올 곳을 왔다는 느낌, 음산하고 칙칙한 느낌을 줘서는 안된다.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당당하게 드나들 수 있는 분위기의 매장이 손님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성인용품, “당당하게 즐겨라”

박씨는 성인용품을 구입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일본의 성인용품시장은 2조원대를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성인용품시장도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최근 성인용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판매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독신남녀, 장애인, 노인들에게 성인용품은 꼭 필요한 물건이다. 더욱이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건전한 성욕구 해소차원에서도 성인용품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인용품을 변태나 밝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보는 시각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성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성인용품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 성인용품이 미성년자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더 많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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