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인가. 지난 70년대 수십억원대의 사기대출 행각을 벌인 ‘대형 금융사기의 원조’ 박영복(69). 당시 ‘청년재벌’을 넘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종친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던 그는 정보부 간부와 함께 은행장에게 압력을 넣어 천문학적인 돈을 부정 대출했음에도 단순한 사기사건으로 처리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지난 74년 70억원이 넘는 은행 부정대출 사건으로 구속돼 두차례에 걸쳐 22년의 징역형을 살았던 그가, 이번에는 불법 다단계 사업을 벌여 1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사기 및 관세법 위반)로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세관에 의해 인천지검에 고발됐다. 근 30년만에 다시 발동이 걸린 그의 영화같은 사기행각에 경찰은 혀를 내두르고 있다. 70년대 ‘귀신같은’ 사기수법으로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던 박씨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01년.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숫자였던 70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여 총 22년이라는 긴 감옥살이를 끝내고 만기출소한 직후였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였지만 그의 몹쓸 버릇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금융사기에 더하여 다단계 기법까지 동원, 사기행각을 벌이기로 계획한 그는 출소하자마자 국내 7개, 미국과 홍콩에 6개의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인천공항세관 조사1계 담당자에 따르면 해외 곳곳에 유령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에 거주하는 탓에 그곳 사정에 밝은 아들이 있었던 데다, 미리부터 벌여놓았던 수건의 사기행각으로 자금을 원활히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사기행각은 이번 일이 발각됨에 따라 줄줄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세관 관계자의 말이다. 박씨는 2002년 9월부터 올 6월까지 흔히 구할 수 있는 한약재를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에 번갈아 돌리면서 마치 외국에서 수입한 약재 원료를 국내에서 가공해 수출하는 것처럼 꾸몄다.

그는 수입원료를 가공해 완제품으로 수출한다고 허위선전하는 과정에서 칡뿌리 등 값싼 한약재를 항암성분이 있는 아가리쿠스 버섯분말이라고 속여 포장만 바꿔 거래하는 수법을 썼다. 그는 뛰어난 언변과 타고난 사교성으로 가까운 측근은 물론, 친구와 동창들에게까지 접근해 건강식품 원료를 수입하는데 자금을 투자하면 2개월 후 높은 수수료를 쳐서 돌려주겠다고 속였다. 세관에 따르면 박씨는 지인들에게 “한약재 원료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신용장 개설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면 수입대금의 5%를 지급하겠다”고 꼬였다는 것. 이어 그는 이렇게 제공받은 담보물로 금융기관에서 300여억원을 인출한 뒤 한약재 원료 등의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담보제공자에게 2,000만~5,000만원을 지급하는 수법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이렇게 해서 그가 투자받은 돈은 무려 2,300억원이었다.

1차 조사를 맡았던 세관에 따르면 박씨가 담보제공을 통해 받은 300억원 중 200억원 가량은 현재 금융기관에 남아있는 상태이며, 나머지 100억원은 국내에서 아파트 15채와 공장용지 등을 마련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 22년에 걸친 투옥생활을 끝내고 출소한지 불과 4년여만에 또다시 철창신세를 지게 된 박씨. 두 번째 부인과 재혼, 아들 셋을 두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듯했던 그는 30년만에 다시 ‘대형사고’를 치고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세관 관계자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젊은 시절의 범죄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제 버릇 남 못준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희대의 금융사기범 박영복은 누구

희대의 금융사기범 박영복 사건은, 박씨가 지난 74년 ‘금록통상’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해 지인 등으로부터 빌린 10억원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숫자였던 억대의 거금을 예치하자 박씨는 곧바로 금융계에서 ‘청년재벌’로 떠올랐다. 또 당시 불과 30대 중반에 불과했던 그가 거액의 돈을 주무를 수 있는 것은 주위에 뒤를 봐주고 있는 거물급 정치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그럴싸한 루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박씨는 예금잔액을 미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4억8,000만원을 밑천으로 본격적인 사기행각을 벌였다. 부동산 등기부와 수출신용장을 위조해 8개 은행에서 총 74억원의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은 그의 사기행각은 1978년 중병을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돼 풀려난 이후에도 멈출 줄 몰랐다. 그는 출소 후 또다시 무역회사를 차려놓고 녹용과 다이아몬드 등을 밀수해 부당 이익을 챙기는 한편 은행에서 3억7,000만원을 부정대출 받았다가 지난 82년 다시 사기행각이 드러나 징역 12년형을 추가 선고받고 2001년까지 복역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