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 초대형 로비사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검·경·언 뿐만 아니라 전·현직 국회의원에게까지 로비를 한 홍모씨의 세칭 ‘로비리스트’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특히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인물이 대두되는 등 확산 일로로 치닫고 있다.이 사건의 핵심은 네팔 등 아시아 국가들에 인력송출업을 전문으로 하는 한 기업의 로비스트로 활약한 홍모씨가 정치권을 비롯해 검·경·언론계 등 권력 집단을 상대로 무차별 로비를 벌였다는 것. 하지만 이 사건의 이면에 가려진 또다른 내막이 있음이 점차 드러나고 있어 주목된다.그 중 하나가 이 사건이 ‘장군잡는 여경’으로 각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면허증 위조사건에 연루되어 지난 7월 구속된 강순덕 경위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부분이다.

강 경위는 여성 경찰로는 드물게 장군들의 비리를 수사해 ‘장군들의 비리커넥션’을 밝혀내면서 스타경찰로 부상했다. 그러나 강 경위는 세칭 ‘대통령 사생활 잡담’이라는 사건에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르다가 면허증 위조사건이라는 ‘생뚱맞은’ 사건으로 영어의 몸이 됐다.그런데 전혀 상관없을 듯 보이던 이번 홍씨 사건이 지난 1월 강순덕 경위가 처음 첩보를 받아 사건을 파고들었음이 밝혀지면서 강 경위의 몰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실제로 강 경위는 이 사건을 집중 파고드는 과정에서 엉뚱한 면허증 위조사건에 걸려 전격 구속된 것이다. 강 경위의 구속은 이 사건의 ‘비밀’을 묻어두기 위한 공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 경위 팬카페를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누군가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10년전에 벌어진 강 경위의 이력을 들춰내 몰락시킨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2월 상황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수사팀 4반장이었던 강 경위는 당시 경찰 고위층을 포함해 검사, 기자 등이 연루된 사건의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로비스트인 홍씨가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강 경위는 3월 홍씨의 집을 압수수색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다음달인 4월 강 경위는 홍씨를 상대로 네팔 인력 송출기업 비리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홍씨가 네팔인 L씨로부터 1억4,000만원을 받아 검·경·언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펼친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강 경위는 홍씨를 상대로 L씨에게 받은 돈의 용처를 강하게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뇌물수뢰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석연찮은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이 지난 4월 홍씨 리스트를 알고서도 침묵했던 점이나, 경찰 수사가 한창인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중단 지시를 내렸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 경위는 왜 무죄를 주장하나

강 경위는 현재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 조사를 통해 이미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검찰은 “강 경위가 수배를 받고 있던 건축업자 김모씨의 부탁을 받고 함께 구속된 김모 경감 명의로 위조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게 해준 뒤 사례금 명목으로 1,8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 경위는 “면허증 재교부 신청서를 대신 접수했을 뿐 김씨에게 면허증을 위조해준 적이 없다. 김씨에게 받은 1,800만원도 빌린 돈을 돌려받은 것뿐이다”면서 일관되게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홍씨 리스트’ 몰랐나

최근 홍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전 광역수사대장 강모 경정은 그동안 다이어리의 존재를 부인했다. 강 전 수사대장은 언론을 통해 “경찰 수뇌부에는 다이어리가 보고된 적이 없다. 나도 홍씨와 얘기하는 과정에서 다이어리의 존재를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는 지난 4월부터 홍씨 일기장에 나오는 경찰간부 명단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씨의 다이어리를 확보한 강 경위가 비리에 연루된 경찰 관련자를 서울경찰청과 경찰청 상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 경위는 당시 로비 사건에 연루된 강 전 수사대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층부에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때문에 강 전 수사대장은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경찰 간부를 포함한 35명의 명단이 이미 상층부에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는 홍씨 리스트를 몰랐다는 그동안의 경찰 주장과 엇갈린 증언이다. 특히 경찰은 이들의 명단을 확보하고도 4개월여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꼴이 되기 때문에 의혹을 낳고 있다.

검찰, 수사중단 지시 왜

경찰에 따르면 당시 검찰도 홍씨가 잠적한 시기에 수사중단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홍씨 사건을 수사 중인 광역수사팀은 잠적한 홍씨를 잡기 위해 통화내역 조회 등을 추가로 검찰에 요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더이상은 승인이 불가능하다’면서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찰은 홍씨를 검거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4월 홍씨가 잠적하고 수사가 지연되자 검찰에서는 ‘사기사건인 것 같은데 (홍씨를)못잡으면 빨리 수사를 종결하라’고 종용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홍씨 사건을 단순히 사기사건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한다. 그러나 경찰이 홍씨 다이어리를 입수한 상황에서 검찰이 사건에 연루된 검찰 인사 명단을 모를 리가 없다. 특히 검찰은 홍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다이어리에 거론된 검찰 간부를 자체조사하겠다고 경찰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검찰이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수사종결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로비 연루자 36명이 전부인가

경찰은 최근 홍씨 사건에 연루된 인사가 44명이라고 밝혔다. 홍씨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정치인(현직 국회의원 포함) 3명, 검찰(수사관 포함) 5명, 경찰 15명, 언론인 7명, 금융권 관계자 4명, 육군중령 2명 등이 포함돼 있다. 당사자들은 현재 자신들의 금품 수수나 청탁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다이어리에 거론된 한 경찰인사는 “선배 소개로 홍씨를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식사비조로 100만원을 받았는데, 민망해할까봐 받은 것이지 청탁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다른 검찰 인사도 “사실 여부를 떠나 이름이 거명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오랜 시간 동안 알게 된 사이이기 때문에 몇 번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금품을 수수한 적은 없다. 이번에 홍씨가 구속된 것도 신문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홍씨 리스트에 연루된 인사들이 이들뿐일까 하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 18일 홍모씨 사건을 밝히면서 로비의혹 사건에 연루된 인사가 36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흘 뒤인 23일 44명의 경찰이 홍씨로부터 금품이나 선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때문에 홍씨 사건에 연루된 인사가 과연 어디까지일까에 세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검 Vs 경 신경전’ 2라운드 돌입 - 홍씨 리스트 두고 또다시 수사권 신경전

최근 수사권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검찰과 경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홍씨 사건의 주도권을 놓고 또다시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최근 홍씨 사건에 대한 수사자료 일체를 검찰에 인도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홍씨가 작성한 다이어리만은 검찰에 넘겨주지 않고 있다. 다이어리에 언급된 검찰 인사들의 수사도 직접 하겠다는 뜻을 검찰측에 전달했다. 지난 22일 “이번 사건을 우리(경찰)가 수사하겠다고 검찰에 통보했지만 검찰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 유현철 신임 광역수사대장의 말은 요즘 경찰의 분위기가 어떤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의 이같은 요구를 묵살했다. 검찰은 최근 홍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다이어리에 거론된 검찰 간부를 자체조사하겠다고 경찰측에 통보해 강한 반발을 샀다.

홍씨의 다이어리도 조속히 검찰에 넘겨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신경전 이면에는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 숨어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홍씨 사건의 주도권을 쥔 쪽이 아무래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최근 홍씨 사건에 연루된 경찰서장 두 명을 전격적으로 전보 조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단 부담을 털고 가자는 심산인 셈이다. 검찰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홍씨의 경우 유명한 브로커로 재건축 비리, 송출비리, 공사하청비리 등 손을 안 댄 곳이 없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검찰과 경찰이 홍씨를 먼저 잡기 위해 경쟁해 왔다”면서 “홍시 수사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두고봐야 알 것”이라고 귀띔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