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에서 구출한 시츄’, ‘도살업자에게 맞아 죽은 시베리안 허스키’, ‘순식간에 전기구이가 된 흰둥이’, ‘우리안에 갇혀있는 애완견들’…. 한 동물보호 동호회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는 글들이다. 이 사이트에는 개고기 유통의 실체를 고발한 글과 사진들로 가득하다. 놀라운 것은 유통되는 개고기 중에는 가정집에서 자란 흔적이 역력한 소형 애완견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 애완견이 식용으로 거래되거나 즉석에서 도살되고 있는 것이다.

“못먹는 개가 어딨어…다 똑 같지”

지난 8월13일 서울의 한 재래시장. ‘식용견’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한 업소의 우리 안에는 정작 ‘누렁이’는 몇 마리 없었다. 대신 시중에서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코카스 파니엘, 말라뮤트와 같은 고급견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개들도 식용으로 쓰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상인은 “못먹는 개가 어딨어. 삶아놓으면 다 똑 같지…”라며 퉁명스레 내뱉었다. 머리에 리본을 맨 채 우리에 갇혀 있는 시츄나 요크셔테리어도 눈에 띄었다. 상인은 “놈들은 개소주”라고 받아쳤다. 산전 보신탕집을 경영했다는 박모씨는 “애완견이 식용으로 쓰이는 현상은 IMF 이후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유기견들이 급격히 증가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버려진 개들 중 상당부분이 식용을 목적으로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박씨는 “당시 우리 집은 애완용 강아지를 마리당 2~3만원에 사들였는데, 이는 개중에서도 가장 싼 값이었다. 수십마리를 한꺼번에 마리당 만원꼴로 사들인 적도 있다.

이는 다른 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식용으로 길러진 토종 시골 개의 경우에는 15만원까지 주고 사왔을 정도로 오히려 값이 비쌌다고 한다. 애완견은 맛이 없어 먹을 수 없다는 말에 대해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박씨는 “태어날 때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키우는 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개들은 단기간에 살을 찌워 내다팔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밥만 잔뜩 먹인다. 근육이 생겨 고기가 질겨질까봐 운동도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식견으로 길러진 누렁이가 육질이 쫄깃쫄깃하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별 차이가 없다더라”며 “애완견도 양념을 치고 끓여놓으면 사실 맛에서 누렁이와 별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따라서 굳이 공급이 달리는 토종 개를 비싼 값에 사느니,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애완견을 선호했다는 것.

“장애견·병든개도 상관없이 거래”

충격적인 것은 길거리를 떠돌아 다녀 위생상태를 알 수 없는 유기견들까지도 상관없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개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주인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고도 남을 일이다. 실제로 기자와 접촉한 업소주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전문농장에서 건강하게 길러진 토종 누렁이만 취급한다”며 “도살과정부터 요리까지 철저히 위생적인 환경에서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중간상인이 잔인하게 개를 잡는다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기견이나 애완견을 요리에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개 팔겠다고 데려오는데 누가 일일이 건강검진 하고 사나요? 그냥 값만 맞으면 사들이죠”라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그는 “어차피 요리해놓으면 다 거기서 거기니까, 건강상태를 따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역시 견종이나 건강상태와 상관없이 개가 거래되는 현장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떠돌이견은 물론이고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견이나 약물 중독견, 피부병 걸린 개, 임신한 개, 항생제 과다투여로 기진맥진한 개들도 거래된다”는 이들의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로 다 죽어가는 개를 두고 업자들끼리 ‘서로 데려가겠다’며 실랑이를 하는 모습도 여러번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의학적 지식 하나 없는 중간업자가 그 자리에서 개를 잡아서 넘겨주는 경우도 흔하다”면서 “이럴 경우 위생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 “비싼 애완견도 1만원”

식당에 개고기를 넘겨주는 중간업자 김모씨. 그는 “식용견은 근당 가격을 시세대로 측정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무리 고급견이라해도 개시장에서는 오직 ‘고기’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품종이나 혈통, 인물 등은 무시되며 ‘근수’로만 가격이 흥정된다. 애완견은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다는 속설 때문에 토종개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 김씨에 따르면 개고기 시세는 지역과 수요에 따라 유동성이 크며 계절을 많이 탄다. 물론 한여름 시세가 가장 좋다.누렁이건 애완견이건 상관없이 ‘개고기’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아무리 비싼 고급견이라해도 5kg 미만이면 3만~4만원 정도 밖에 못받는다”는 것이 김씨의 얘기다.

심지어 100만원이 훨씬 넘는 불독의 경우 머리가 근수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정작 고기는 별로 없어 가격이 일반 개들보다 낮게 매겨진다는 것. 반면 새끼를 많이 낳는 달마시안의 경우에는 업자들이 ‘식용견’으로 선호한다고 한다. 또 체구가 큰 개를 만들어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교배시키는 탓에 덩치만 큰 듣도보도 못한 잡종견이 태어나는데, 이 역시 근수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인기품목(?)이라는 것. 또 검은 개는 요통에 좋다는 소문에 인기라고. “너무 살이 없어 고기가 되지 않거나 도저히 근수가 나오지 않는 소형견은 개소주로 이용된다”는 그는 “수십만원을 호가하던 애완견들을 마리당 만원꼴로 건강원에 넘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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