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몰락한 대한제국 황실 재건을 위한 물밑 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황실 후손들로 구성된 ‘대한황실비상대책회의’(가칭·이하 비대위)가 최근 출범하는 등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것. 조만간 강북 모처에 사무실도 오픈할 예정이다. 모임을 주최하고 있는 인사들은 현재 비대위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을 겨냥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의 사망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풀고, 대동종약원의 파행 운영을 견제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한제국 왕권 복원을 위한 ‘전초기지’ 성격도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통일 한국 상황에서 남과 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바로 황실이라는 것이다.

사실 황실 재건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이번 한번만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때부터 정통성 회복 차원에서 황실 복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재기돼 왔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구심점을 찾지 못해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주체도 대한제국황실복원추진위원회와 같은 네티즌 모임이어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최근의 특징은 황실 후손들이 직접 이같은 모임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지난 7일 비대위 총재로 취임한 이석씨를 비롯해, 총장급 2명, 국장급 2명 등 임원들이 대부분 황실 인사로 채워졌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황실 복원을 위한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7일 오전 11시 남양주시 금곡동 영원(영친왕 묘소). 이석씨를 비롯한 황실 후손들은 이곳에서 ‘대한황실비상대책회의’ 선포식을 가졌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을 견제하는 게 비대위 창립의 표면적인 이유다. 이날 비대위 총재로 취임한 이석씨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경찰은 구 황세손의 시신을 형식적으로 부검한 뒤, 단순 사망으로 처리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종약원은 아무런 검인절차 없이 장례를 치렀다”고 비난했다. 이씨는 이어 “구 황세손의 서거는 단순한 황손의 죽음이 아니다. 경술국치 이후 100년의 비참한 침략행위를 매듭짓는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종약원이 안일하게 대응했다”면서 “향후 종약원 수뇌부에 대한 퇴진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대위를 구성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종친회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대한제국 황실 재건을 위한 전초기지가 바로 비대위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황실 후손은 “나라의 정통성 회복 차원에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내부적으로 팽배해져 있다”면서 “이번에 구성된 대한황실비상대책회의는 이를 위한 전초기지 성격이 짙다”고 귀띔했다. 이석씨도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씨는 “일본의 강탈에 의해 빼앗긴 대한제국 황실은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복원되지 않고 있다”면서 “정통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조만간 강북 모처에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총재를 비롯한 임원진 구성도 이미 마무리된 상태다. 이씨는 “총장 2명, 국장 2명 등 10여명 내외의 임원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에는 국회와 청와대에 관련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씨는 “우선적으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현재는 이들로부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씨의 이같은 주장 이면에는 통일 이후 상황도 포함돼 있다. 요컨대 통일 한국이 되면 남과 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황실이 바로 남과 북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씨의 계산이다. 그는 “통일 대한민국 하에서는 우선적으로 정통성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가장 확실한 중심수단이 황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반드시 통치를 하지는 않더라도 상징적인 왕권 복원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주이씨 종친회 일각에서는 황실 후손들의 이번 비대위 구성 이면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황실 후손들은 현재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어려운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 일부의 경우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힘들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석씨가 대표적인 예다. 의친왕 11남인 이석씨는 현재 전주시의 후원을 받아 완산구 교동 한옥마을 승광재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뒷좌석이 짐칸인 2인승 화물차에 옷가지를 싣고 여관과 찜질방을 전전하는 형편이었다. 의친왕 2녀인 이혜원 옹주 역시 현재 하남시의 한 쪽방에서 아들 진왕씨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같은 빈곤의 악순환을 퇴치하고, 황실 후손들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서로 목소리를 모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 종친회 관계자는 “황실 후손들 중 상당수가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일부의 경우 정권의 탄압에 못이겨 성을 바꾸기까지 했다”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 차원으로 힘을 결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임을 결성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이석씨 일문일답 - “국민적 동의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 대한황실비상대책회의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 총재 1명을 포함해, 총장급 2명, 국장급 2명 등 10여명 정도로 임원진을 구성했다. 이달 중에 사무실도 오픈할 예정이다.

- 비대위 설립 목적은. ▲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파행 운영을 막기 위함이다. 구 황세손의 사망 미스터리를 포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황실 후손들로 구성된 모임을 만든 것이다.

- 비대위가 황실 복원을 위한 전초기지라는 설이 있다 ▲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일본의 강탈에 의해 빼앗긴 대한제국 황실은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복원되지 않고 있다. 정통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물론 황실 복원이 통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일지라도 왕권을 복원해 민족의 구심점을 찾자는 뜻이다.

- 통일 이후 상황도 염두에 둔 것인가. ▲ 그렇다. 통일 한국이 되면 남과 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황실이 바로 남과 북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 무엇보다 국민적 동의를 얻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얼마전 국회와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민적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대동 종약원의 반응은. ▲ 정확히는 모르겠다. 단지 이번 기회를 통해 황실 후손들의 의견을 결집했다는 점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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