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보금자리의 실종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혼자 쓸쓸이 지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 소식이 자주 들려오고 있다. 고독사의 경우 가족, 친지들이 임종을 지켜주기는 커녕 사후 시신 수습조차 해 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늘어나는 고독사는 한국 사회가 ‘무연고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전조라고도 할 수 있다. 고독사의 비극은 혼자 사는 노인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고독사의 연령층은 젊어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일본의 경우 한 해 3만 건이 넘는 고독사 중 상당수가 은둔형 외톨이의 고독사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지난 2일 40대 후반에 대기업을 명퇴하고 아내와 이혼 후 10여 년을 홀로 외로이 지내던 60대 남성이 숨진 지 15일 만에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6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한 아파트 안방에서 누운 채 숨진 박모(60·무직)씨는 황달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수도 배관이 터져 바닥이 온통 젖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빈 막걸리통과 라면 봉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금융권 회사에서 컴퓨터 관련 직무를 하다 11년 전 명퇴를 한 후 택시운전사 일을 시작했다. 내성적인 성격인 그는 이혼 이후 매일 막걸리 두 병 이상씩, 담배는 두 갑 이상을 피웠다. 간암 진단을 받은 박씨는 6개월 전 택시회사를 그만두고 특별한 치료 없이 집에서 술만 마시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을 알린 것은 가족도 지인도 아닌 ‘누수(漏水)’였다. 아랫집 주민이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며 119에 신고한 것이다. 박씨는 왕래하는 이웃주민이 따로 없었고 아내나 두 자녀와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아랫집 주민의 신고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늦게 발견됐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노년 1인 가구, 고독사의 뇌관

독거노인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고독사한 경우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 등으로 인한 사회소외 계층이었다. 2000년 우리나라에서 혼자 사는 노인은 54만 명으로 전체 노인의 약 16%를 차지했다. 2012년 독거노인은 119만 명으로 숫자로 보면 두 배 이상 들어났고 전체 노인의 20%를 넘어섰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고독사의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414만2165가구다. 2000년 222만4433가구보다 86%나 폭증한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1인 가구 중 40~50대가 29.9%, 20~30대가 23%이다. 전문가들도 앞 다퉈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고독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35년에는 베이비부머의 이혼과 사별 등으로 인해 독거노인이 343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11년 서울시에서만 홀로 죽은 무연고 사망자만 270명에 이른다. 2009년 184명, 2010년 223명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고독사한 시신들을 화장하고 유해를 보관하는데 2012년 기준으로 3000개가 넘었다.

고독사의 가장 밑바닥에는 빈곤과 질병 문제가 짙게 깔려있다. 전체 노인의 절반 가까이는 경제적 빈곤으로 생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곤층이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년층의 경제적 빈곤은 45.1%로 OECD평균인 13.5%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75~79세 노인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89명으로 전체 평균 32.1명의 두 배가 넘는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질병으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독거노인은 20만 명으로 전체 노인의 17%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장기요양과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등 예방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31.5%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응급상황 발생 때 고독사를 직접 예방할 수 있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와 응급안전서비스, ‘노노케어’(독거노인이 독거노인을 돌보는 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은 20만7000명으로 전체의 17.4%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 소득 100만 원 이하가 두 명 중 한 명 꼴(53.99%)이었다. 1인 가구 직업군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직군 역시 무직 및 분류불능(49.3% )이었고 단순노무 종사자(14.9%)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화려한 싱글’보다 ‘가난한 외톨이’가 더 많다는 것을 통계가 드러내 주고 있다.

이처럼 홀로 지내는 가난한 노년의 1인 가구는 고독사의 잠재적 뇌관이 될 전망이다. 이 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은 63세 이상의 노인들은 정부차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주기적 관리를 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연령층은 경제적·사회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치가 전무하다.

무연사회 징후

문제는 고독사가 더 이상 노년층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경기 불황과 비정규직 심화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30세대 역시 고독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최근 50~60대 초반의 중장년 고독사가 크게 늘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중장년층 고독사의 경우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같은 추세는 지난달 부산에서 발생한 30대 여성의 고독사가 반증했다.

지난달 부산의 4년제 대학을 나온 한 30대 여성이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오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아사(餓死)하는 방식의 죽음을 택한 것으로 추정돼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달 6일 오전 10시께 부산 영도구 청학동 A(여·33)씨의 집에서 숨진 지 7개월 된 것으로 추정되는 A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발견 당시 A씨는 잠옷을 입은 채 반듯이 누워있었고 시신은 전신이 많이 부패하고 얼굴은 미라처럼 말라있었다.

수도와 전기는 지난 5월부터 사용료 미납으로 모두 끊겨 있었고 33㎡ 남짓한 A씨의 집에는 음식물도 전혀 없었다. 당시 경찰은 “부검의의 소견과 A씨의 노트북 접속 기록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7개월 전쯤 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종의 고독사로 보고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부산의 모 사립대를 졸업했고 중국에 1년간 유학도 다녀왔다. 그러나 졸업 직후 한 중소 IT 업체에 취직해 1~2년 간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직업 없이 지냈다. 2009년 친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혼자 부산에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경찰조사에서 “딸이 예전부터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심해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고, 주변에 친구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A씨의 쓸쓸한 죽음은 ‘무연사회(無緣社會)’의 징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연사회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이 단절된 사회를 말한다. 또 인간관계망이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살다 죽음도 쓸쓸히 홀로 맞는 것을 두고 무연사라 부른다. 이 단어는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이나 한국에서도 연고 없이 외롭게 죽는 고독사가 점차 늘어나는 현상에 비춰볼 때 ‘남의 일’이라고 할 수만은 없게 됐다.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이 쓴 <무연사회> 역시 “한국은 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낮고 만혼·미혼 추세가 급증하고 있어 일본과 처한 상황이 별로 다를 게 없다”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대책 마련 절실

고독사가 늘면서 한국에서도 고인의 집과 유품을 정리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내에 5개 지점을 둔 유품정리업체 ‘키퍼스 코리아’는 2010년 국내에 진출해 점차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업체는 사망 이후 시신을 처리하거나 유품을 정리해줄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사망 이후 불거질 문제를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담당한다.

고독사가 ‘이웃 나라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한 현상으로 자리 잡자 고독한 죽음을 맞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 앞으로 늘어날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외사례를 비춰 제도적 장치를 마련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호주의 경우 독거노인을 돕는 ‘독거노인 입양’(Adopt-a-pensioner)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등록한 호주인들과 독거노인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호주는 웹사이트 등을 통해 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등록한 호주인들과 독거노인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웹사이트를 통해 연결된 독거노인들을 자신의 양부모로 삼아 물질적으로 돕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프랑스는 지자체마다 노인클럽을 활성화 시켜 노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다. 1975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전국 곳곳에서 활발히 전개 중이며 놀이 뿐 아니라 전문 기술까지 습득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퇴직 고령자를 재취업시켜주는 사업주 지원을 강화했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 상담을 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실버 인재센터도 확충하고 있다. 또 일본 도쿄가스는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 여부를 자녀나 친인척 등 의뢰인의 휴대전화나 이메일로 알려주는 유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스 사용량이 줄어들면 곧바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고독사 예방을 위한 노인 복지 대책도 중요하지만 1인 가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연동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가족을 넘어서는 대안적 커뮤니티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