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부서는 2월 24일 존속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권모(27·남)씨와 심모(51·여)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결과 모자지간인 이들 두 사람은 각자에게 남편과 아버지였던 권모(55·남)씨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까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자가 공모하여 저지른 패륜적인 범죄에 대해 경찰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근 30년을 한집에서 같이 살았던 가장을 죽인 이들 모자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강원도 횡성에서 방앗간을 하는 권우철(27·가명)씨는 아버지와 평소 그다지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다. 부자지간 인연을 끊어버릴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늘상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권씨가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 심모(51·가명)씨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때문이었다.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아버지는 어머니 심씨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그는 걸핏하면 ‘왜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니냐”는 억지를 부리며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렸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심씨에게 심한 욕설과 폭언을 수시로 퍼부었다. 또 수시로 심씨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등 심각한 폭력을 휘둘렀다. 아버지의 의처증으로 인해 권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30년의 결혼생활 내내 심각한 마찰과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특히 아버지가 한번씩 행패를 부릴때마다 집안은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아버지의 행동을 지켜봐온 권씨의 눈에 아버지가 곱게 비쳐질리 만무했다.그런 와중에 권씨는 지난해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 아버지에 대한 권씨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이 불만은 그동안 권씨가 아버지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인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횡포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결혼 후 권씨의 불만은 부동산과 현금 등 5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정작 하나뿐인 아들인 자신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비롯됐다.권씨가 처음부터 방앗간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권씨의 직업은 사회복지사였다. 그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이들은 김포에서 사회복지사로 같이 근무하다가 딸(7개월)이 태어나자 직장을 그만두고 강원도 횡성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타향에서 방앗간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아버지와 권씨간 갈등의 원천이 됐다.원래 방앗간을 할 생각이 없었던 권씨가 방앗간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때문이었다. 결혼초에는 권씨와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가 출산을 해서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되자 권씨의 생활에는 상당한 타격이 왔다. 권씨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혼자서 버는 수입은 월 120만원으로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권씨는 아버지에게 “방앗간을 해보고 싶은데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아들의 요청에 아버지는 임대비 2천만원을 들여 강원도 횡성에 방앗간을 얻어줬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권씨의 원망은 더욱 커져갔다. 권씨가 횡성으로 내려온 것은 스스로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씨는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방앗간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연고도 없는 횡성에 일방적으로 방앗간을 얻어놓고 아들 식구를 반강제적으로 내려보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권씨는 아버지가 재산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에 심각한 불만을 품게된다.

문제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권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근 30년 동안 남편에게 시달릴대로 시달려온 어머니 심씨의 불만 역시 날로 쌓여가고 있었다. 심씨는 남편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해대며 수시로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은 심씨에게 있어 언제나 눈에 가시였다. 심씨는 “더 이상은 같이 살기 싫다”며 아들 권씨의 집에 머무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행동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들 모자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지난해 11월 28일. 권씨와 그의 어머니 심씨는 그날도 횡성 권씨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심씨가 남편에게 당한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내자 아버지에게 하고한날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 어머니를 지켜봐왔던 아들 권씨의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어머니 심씨는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겠다”며 아들에게 그동안 마음에 품고있던 ‘계획’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다. 바로 남편을 살해하자는 내용이었다.

심씨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아버지에게 불만이 쌓일대로 쌓였던 권씨는 이내 어머니의 계획에 동의하게 된다. ‘이렇게 시달리며 사느니 아예 없애버리자’는 쪽으로 뜻을 모은 것이다.결국 지난해 12월 11일. 권씨는 “주소이전을 해야하니 집으로 오라”며 아버지를 강원도 횡성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저녁 8시경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도착했다. 권씨는 어머니 심씨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한 뒤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권씨는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다”는 말로 아버지를 돌아눕혀 놓은 뒤 목을 힘껏 비틀어 졸랐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망치로 아버지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정수리 부분을 치면 한번에 죽을 것’이라는 권씨의 예상과 달리 아버지의 반항은 거칠었다.

권씨는 조급해진 나머지 둔기로 아버지의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겁에 질린 아버지는 아들이 내리치는 둔기를 피해 아내 심씨가 있는 방으로 도망을 갔고 심씨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남편을 붙들었다. 어머니 심씨가 아버지 를 옴싹달싹 못하게 붙들고 있는 틈을 타 권씨는 둔기로 사정없이 내리쳐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을 확인한 권씨는 강도로 인한 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죽은 아버지의 목을 두어차례 흉기로 찌른 뒤 승용차에 싣고 인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봐둔 인천의 한 한적한 농수로에 시신을 버리고 달아났다.사건을 담당한 강력 1반 양동재 팀장은 “그동안 온갖 험한 사건들을 맡아왔지만 모자가 공모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라며 탄식을 토해냈다. 두 모자가 가슴 깊이 쌓아두었던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30년 가까이 한 집에서 살아온 가장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어이없는 참극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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