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병에게 구타를 당한 뒤 숨진 육군 모 부대 이등병의 사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가족은 타살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지만 군 당국은 부검 결과 등을 근거로 타살 흔적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군 당국은 그러나 이에 대한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이번 사건에 대해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보일러실에서 군화 끈에 목이 졸린 채로 발견된 이등병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유가족들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 구정을 닷새 앞둔 지난 5일 오후 7시경 강원도 화천 육군 모 부대의 보일러실에서 자살하려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병 한 명이 발견됐다.

이 사병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6일 오후 7시경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사망한 사병은 강원도 화천의 모 부대에 근무하는 강명구 이등병. 강 이병은 입대한지 5개월이 갓 지난 ‘신참’이었다. 군 당국은 강 이병이 전투화 끈에 목을 매고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 현장을 최초로 발견한 김모 상병은 사건 조사가 시작되자 “발견 당시 강 이병은 보일러실에서 전투화 끈에 목맨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김 상병은 또 헌병조사에서 “강 이병이 의식을 잃은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인공호흡을 실시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부대 관계자들은 “김 상병의 인공호흡 덕분에 강 이병의 꺼져 가는 맥박을 살릴 수 있었다”며 김 상병의 적절한 응급조치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주위의 이러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강 이병은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국군수도병원 관계자는 “강 이병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미약하게나마 맥박이 살아 있었으나 이미 장시간 산소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회생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강 이병이 사망하자 강 이병 사망 사건을 조사하던 군 당국은 그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강 이병의 아버지 강성길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군 당국의 조사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강 이병의 죽음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들은 강 이병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유가족들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강 이병이 남긴 유서의 필체가 본인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강 이병의 여동생 강모양은 “간략하게 쓴 유서는 한눈에 보기에도 오빠의 글씨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보는 것은 강 이병과 친한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군 당국은 조사결과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가족들과 상반된 견해를 드러냈다. 강 이병의 유서에는 “아버지, 어머니, 못난 이 자식을 용서하세요. 내 친구들 광석이 상철이 미안하다. 먼저 간다. 군대폭행이 아직도 존재하고 욕설·가혹행위 여전하다. X같은 곳이다”라고만 써 있을 뿐 다른 내용은 없다. 마지막을 정리하는 글이라고 보기에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런데 여기에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 이병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이름이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군 당국은 유서에 친한 친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쓰여진 점을 미루어 본인이 직접 쓴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이에 대해 “같은 부대에서 생활하다보면 후임병의 친한 친구들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다.이와 함께 유가족들은 사건의 전모를 알면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유가족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최초로 현장을 발견했다는 김모 상병은 강 이병이 자살했다는 당일 강 이병을 구타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김 상병과 함께 강 이병을 구타하고 기합 준 이들은 모두 4명으로 그 중 김 상병이 주도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 강성길씨는 “이번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 가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아들을 괴롭히고 때린 사람은 김 상병인데, 최초 발견자도 같은 김 상병이다. 또 인공호흡을 시켰다는 사람도 김 상병이다.

더 이상한 것은 김 상병이 보일러 관리병이라는 점이다. 내 아들은 왜 하필 보일러실에서 발견됐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왜 자신을 때린 고참이 근무하는 곳에서 자살을 했으며 유서는 왜 그리 간단한 것인지 의문이다. 특히 내 아들은 할아버지와 내가 국가 유공자기 때문에 병역 특혜를 받을 수 있음에도 자진 입대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그렇게 쉽게 자살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눈물을 삼켰다. 강씨는 또 “군 당국은 이런 사실들을 참고해서 내 아들의 죽음을 철저히 규명해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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