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중후반기 권력구도의 밑그림이 본격 그려질 전망이다. 중반전까지 ‘개혁 대 실용’ 구도로 전개되던 전당대회 당의장 후보 대결은 이제 대권후보간 대리전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노심’(盧心-노무현 대통령 의중)의 향배. 노 대통령은 차기 지도부 구성과 관련해 일단 ‘엄정중립’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당 의장 경선과정에 ‘노심’이 깊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여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이번 전당대회 후 자신의 집권 중후반기 국정운영을 위한 권력구도 재편작업에 본격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집권 중후반기 권력구도 플랜의 첫 단계는 당권장악.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당권 장악 플랜은 당 의장 경선에 나선 후보자 면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문희상 염동연 한명숙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고, 개혁당파로 분류되고 있는 ‘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까지 가세했다.이들 측근 4인방은 이번 경선에서 당 의장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되는 상임중앙위원(한명숙 여성몫 확정)에 무난히 선출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 전망이 현실화 될 경우 차기 우리당 지도부는 노 대통령 측근들로 메워지게 된다. 당 의장 경선 과정에 ‘노심’이 투영되고 있다는 분석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여기에 당초 문희상 의원과 함께 유력한 당 의장 후보로 거론됐던 김혁규 의원이 불출마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도 ‘노심’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친노직계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조직력이 약한 김두관 전 장관을 지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란 분석이다.김 의원이 불출마 선언에 앞서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는 사실은 ‘노심’ 논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노심’ 논쟁의 중심에는 이른바 ‘문희상·김혁규 빅딜설’이 자리잡고 있다. 김 의원은 당 의장으로 문 의원을 적극 지원하고 문 의원은 차기 총리로 김 의원을 지원한다는 게 빅딜설의 골자. 또 이 빅딜에는 노 대통령도 암묵적 동의를 했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당 의장 경선 구도가 확정되기 전 여권내 386세력 등 친노그룹이 차기 당 의장 뿐 아니라 원내대표도 친노사단이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던 것도 ‘노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광재 백원우 이화영 의원 등 친노직계 의원 12명으로 구성된 ‘의정연구센터’는 경선돌입 전에 ‘당 의장-한명숙, 원내대표-문희상’ 카드를 적극 밀기로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비록 문 의원이 당 의장으로 목표를 선회하면서 386세력 등 친노그룹이 구상했던 ‘한·문카드’는 물거품이 됐지만 범친노그룹이 당권장악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노 대통령의 당권장악 플랜과 관련해 여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삼각편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문희상, 영남권 김두관, 호남권 염동연’을 주축으로 당권을 재편한다는 게 삼각편대론의 골자다. 이는 전대 과정에서 양분된 실용파(문희상 염동연)와 개혁파(김두관)를 아우르는 동시에 수도권 및 영호남 대표주자를 당 지도부에 골고루 포진시키는 이상적인 구도다.실제로 경선 막판에 범친노세력들이 이 세 후보를 물밑 지원하고 있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각 후보 캠프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 이 세 후보가 상위권에 랭크돼 있고, 상호 전략적 연대를 물밑 추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두관 전 장관과 염동연 의원의 경우 각각 영남권과 호남권을 중심으로 세 확산 경쟁을 펼치고 있어 자칫 영호남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처럼 노 대통령과 청와대측이 당권장악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집권 중후반 국정운영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 노 대통령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총리에게 내치(內治)를 맡기는 이른바 ‘분권형 국정운영 및 책임총리제 강화’ 구상을 강력히 피력한 바 있다. 집권 2년간의 시행착오와 정책적 오류를 반성하는 동시에 집권 3기부터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나가겠다는 게 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향후 국정운영의 기본 골격이다.노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이 원만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으로 정치적 지지기반인 열린우리당이 안정돼야 한다. 노 대통령이 친노세력들을 차기 당지도부에 포진시키려는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같은 당권장악 플랜이 현실화되면 청와대와 정부를 잇는 당-정-청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도 보다 확고해질 전망이다. 국내정치와 내치는 각각 당과 총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21세기 선진국 대열 합류를 위한 외치(外治)에 힘쓰겠다는 국정운영 구상과도 맞물려 있다.권력구도 플랜의 2단계는 내각장악. 현재 내각은 이해찬 총리를 중심으로 정동영(통일부)·김근태(복지부) 장관 등 차기 대권주자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점증적으로 분권형 국정구상과 맞물린 실무형 인사들이 내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이끌어갈 3기 총리 적임자로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여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김혁규 의원을 유력한 차기 총리로 지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김 의원이 노 대통령과 독대한 이후 당 의장 불출마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는 당권 및 차기 총리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권력구도 구상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청와대 참모진도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측근들로 채워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청와대 인사는 현 김우식 비서실장 체제 이후 박봉흠 전 정책실장, 김병준 정책실장(현),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 실무형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코드형’에서 ‘실무형’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집권 말기와 퇴임 후 준비를 전담해야 하는 청와대 요직은 결국 가장 믿을 만한 최측근 인사가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문재인 민정수석은 여전히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고, ‘왕특보’인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것도 집권 중후반 청와대 비서진 구성 방향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여권 주변에선 문 수석이 차기 비서실장 1순위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당·정·청에 골고루 친노세력을 포진시켜 국정운영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차기 대권주자를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권력구도 플랜을 가동시키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집권 중반기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차기 대권주자 그룹에 당권이 넘어갈 경우 당내 권력투쟁은 조기에 가시화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레임덕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친노직계 세력(문희상 염동연 김두관 한명숙)의 당 지도부 입성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배경에는 대권주자 관리 및 레임덕 차단이라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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