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이즈 계획(UNAIDS)은 지난 6일 아시아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이즈) 확산 방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에이즈 계획이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는 아시아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에이즈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가 새로운 감염자수의 4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전세계 에이즈 감염자수는 3,780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전년에 비해 290만명이나 증가한 수라고 명시했다. 특히 아시아의 경우 지난해 110만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는 에이즈 확산의 우려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내 에이즈 환자도 급증추세

에이즈 확산추세에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에이즈 감염자는 85년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온 결과 현재 총 감염자수는 3,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확인된 감염자와 잠재적 2차 감염자를 포함하면 그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2만여명 정도로 추산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에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무려 302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51명보다 20%가 증가한 것으로 하루 평균 1.7명 꼴로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는 셈이다.지난 7일에는 에이즈 감염자가 헌혈한 혈액을 수혈 받은 A씨가 에이즈에 감염된 데 이어 그 부인도 남편에 의해 2차 감염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A씨의 감염사실은 지난 2002년 5월 동일인의 헌혈을 받은 피로 수혈 받았던 10대 여성이 그해 12월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국립보건원(질병관리본부)의 추적조사로 지난해 4월에야 확인됐다. A씨 부인은 그로부터 한달 후인 5월에 감염자로 확인됐다. 이들은 수혈 받은 지 1년 가까이 지나서야 감염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시 당국은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자가 95년이래 처음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공개했지만 부인의 감염여부는 밝히지 않아 고의로 숨기려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낳고 있다. 감염된 혈액이 수혈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적십자는 현재 효소면역검사법을 통해 에이즈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데 이 검사법으로는 아직 항체가 형성되지 않은 초기 에이즈 감염자의 피를 수혈 받은 경우 그 결과를 조기에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의 관계자는 “현재의 검사 방식으로는 감염 15일 이내인 경우엔 감염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혈액검사방법이 개선되어 조기에 에이즈 감염여부를 밝힐 수 있는 방법(핵증폭검사법)이 시행 중인데도 우리나라는 예산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직도 구태의연한 효소면역검사법에 의존하여 같은 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또 현실과 맞지 않는 정부의 정책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 에이즈예방법에 의한 대응시스템은 기존의 에이즈 감염자로 확인된 사람들에 대한 감독에 치우쳐 있을 뿐 에이즈 감염경로가 다양화되는 추세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또 정책시행과정 중에 ‘감염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법에서 정한 이외의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국민에 대해서도 ‘국가가 법에 의하여 행하는 조치에 적극 협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에이즈 관련 단체는 이에 대해 “기존 감염자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나 불응시 형사처벌을 하는 규정은 마련하면서도 에이즈 감염자가 감염사실로 인해 취업이 제한되고 생계에 고통을 겪는 현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02년 6월에는 여수지방에서 에이즈 감염여성이 윤락가에 종사하다 에이즈를 전파시킨 사건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고백한 한 회사원이 자신의 감염경로에 대해 “회사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갔다가 2차를 나갔는데, 다음날 알고 보니 그녀들 모두 에이즈 감염자였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이는 사실확인이 되기도 전에 TV를 통해 내용이 보도돼 사회전반에 에이즈 공포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사실 여부가 정확히 확인되지도 않은 이야기가 사회에 파장을 던질 수 있는 것은 현 에이즈 예방법과 보건 당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5일에는 적십자사가 에이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당국의 허술한 혈액관리로 60대 남자 두 명이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언론에 제보한 내부고발자 2명을 징계하려다 이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징계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지난 달 25일 밝힌 것이다.적십자사는 내부고발 직원 두 명에 대해 “혈액사업에 대해 과장·왜곡된 내용을 제보함으로써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근무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며 징계 절차를 밟아왔으며,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명백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행위”라며 징계 철회를 요구해왔다.에이즈의 급속 확산에 대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에이즈의 확산을 막시기는 보건복지부의 감염자 관리와 적십자의 혈액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예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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