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 제일의 정치·경제 대국으로 부상중인 중국. 그 엄청난(?) 나라가 바로 우리의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탓인지 중국은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뜨거운 화두 가운데서 빠지질 않는 부동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인의 중국행은 가히 ‘중국 러시’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더구나 최근 우리의 어려운 정치·경제 상황으로 인해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니 이는 곧 중국내 한국 유학생 급증으로 이어진다. 이를 잘 증명하듯 중국교육위원회의 최근 통계에 의하면 2003년말 현재 중국에서 유학중인 한국인들은 3만5,353명으로 중국내 전체 유학생 7만7,715명의 45,5%를 차지, 중국유학생 최다배출국이었던 일본을 제치고 1위로 부상하기도 하였다.

"들러리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중국 상하이의 한 명문대학 한국유학생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주영창(29세·남)씨의 목소리가 다소 나지막해진다. 들러리? 난데없이 들러리라니? 그 사정은 이렇다. 청운의 푸른 꿈을 품고 고생길을 찾아 날아온 중국유학. 열심히 하면 평생 무기인 중국어취득과 더불어 좋은 직장 취직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주씨에게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주씨는 얼마전에 있었던 한국의 모대기업 현지채용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탈락하게 된 이유가 그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다름아닌 “중국어만으로는 힘들다”는 것. “사실 기업측 입장도 이해가 돼요.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거나 이미 잘 구사하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벌써 중국어만으로는 충분한 메리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대기업에 채용된 사람들은 중국에서 약 1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한 어학연수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중국에 오기전에 이미 미국이나 기타 영어권에서 유학하거나 영어연수를 마친 ‘해외파’였다고들 한다. 해외파 우선채용설은 얼마전부터 소문으로 접한 적이 있지만, 주씨 자신이 몸소 체험함으로써 그 ‘위기감’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에 의하면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중국어를 잘하면 대접이 좋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3 년 선배는 졸업하기도 전에 몇군데 회사에 ‘내정’되어있어 좋은 곳을 골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몇년 사이에 상황이 급변, ‘순수파’ 중국유학생은 설 자리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난 정말 유학생활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고개를 들어보니 들러리가 되어 있더라구요.”기자는 또 다른 대학에 재학중인 한 학생을 만나보았다. 3년 전에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행을 선택, 현재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심재섭(31세·남)씨. “중국에 온 한국유학생들은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단기유학한(즉, 어학연수) 친구들에게 치이고 중국에서의 현지채용은 해외파에 치인다. 중국행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학생활을 열심히 한다한들 이런 상태에서는 암담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와 인터뷰를 하다보니 답변내용이 앞의 주영창씨와 비슷한 내용으로 흘러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주씨와의 안면여부를 물어보니 생면부지의 남남이었다. 다시 말해 이는 그만큼 주중 한국유학생들의 사기가 저하, 불안과 허탈감에 방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주씨 또한 인터뷰과정에서 “각 대학교 한국유학생회 회장들과 잘 알고 지내지만 지금 모두들 같은 심정”이라고 한탄한 바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국에 온 이상 중국계 기업으로의 진출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 심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실제로 몇 명의 후배가 중국계 기업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사실 중국계 기업으로의 진출에는 대부분 아직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력 등을 고려할 때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적 생활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의 이런 고민에는 일리가 있다.

한마디로 중국기업의 임금이 우리와 비교할 때 아직도 너무 낮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야 자기나라인 탓에 그 정도 임금으로도 잘 살아가지만 외국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 더구나 기혼자가 한국적 삶에 익숙한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중국식 삶을 살아가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공부하면 할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터널속으로 깊이 빠져들기만 한다는 심씨. 그런데 여기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위와 같은 심정이 비단 이들 두명뿐 아니라 지면상 거론되지 않은 다른 취재원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통해 기자는 ‘묻지마!’식 중국유학과 관련한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름 아닌 중국유학은 이미 포화상태이며 이에 따라 중국유학이 곧 장래를 바꿔줄 수 있는 엘도라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기자는 중국유학 관련 취재중 아주 우연하게 서울의 한 유학원에 근무한다는 김모(남·33세)씨를 만났다. 그에게 중국유학의 현황을 질문하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솔직히 유학알선이 내 업무입니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유학이 더이상 장미빛이 아닌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중국행이 늦으면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듯 부추기고 있질 않습니까? 중국유학이요, 잘 생각해야 합니다. 더 이상 능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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