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갑작스런 무더위가 찾아왔다. 이에 따라 거리의 풍경도 사뭇 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7~8월 정도가 되어야 ‘노출의 계절’이 찾아오지만 이미 6월부터 거리는 ‘살색 풍경’으로 넘치고 있다. 최근에는 ‘선녀족’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우화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처럼 옷을 훌러덩 벗어버린 여자들, 혹은 나무꾼에게 자신의 벗은 몸이 보여지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심리를 가진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배경에는 경기불황으로 인한 초조함과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심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선녀족’의 실태를 취재했다.

현실적인 불안에 대한 대리만족

서울 강남이나 대학가에선 골반뼈가 보일 정도로 속살을 과감히 드러낸 로 라이즈 진(low rise jean)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풍경은 바야흐로 노출의 시대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TV 오락프로와 영화-연극 등에서는 이보다 한술 더 뜬다. 비키니 차림 미녀스타들의 야릇한 포즈가 난무해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기도 하다. 젖가슴 노출도 은근슬쩍 이뤄진다.4~5년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이제는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 노출패션 여인들이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실정이다.서울 L백화점 2층 신세대 여성의류 매장에 근무하는 송모양은 “올여름이 유난히 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 때문인지 예전 같으면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던 끈티나 끈원피스를 사가는 사람이 올해는 부쩍 늘었다”며 “지난해 여름보다 노출의류 판매량이 늘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배꼽티에서 끈티, 노브라 패션까지. 올여름 여성의류 브랜드에선 일제히 아찔패션을 선보였고 몸매가 ‘따라주는’ 몸짱 여성들은 자신있게 노출패션을 선택할 기세까지 엿보이고 있다. 10년 만에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기상예보까지 있고 보면 올여름 도시의 거리는 노출패션으로 그 어느 해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같은 여성들의 과감한 노출 패션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갑작스러운 무더위. 하지만 날씨 탓만 하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노출패션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최근 급격하게 불어닥친 ‘몸짱’열풍과 경기 불황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간 몸짱 열풍으로 몸을 ‘만들어 왔던(?)’ 여성들이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자신을 과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노출을 즐긴다는 김모(27)양의 말이다. “솔직히 여자들이 예쁜 몸매를 가지려는 이유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냐. 몸짱이 돼서 집에서 혼자 보고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몸짱을 만들었다면 거리에서, 지인에게 자신의 몸매를 자랑하는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차림으로 서울 신촌 거리를 활보하던 대학생 변모양은 자신의 섹시 패션이 무어 그리 문제될 게 있겠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입는 사람도 시원하고 보는 사람도 시원해서 좋지 않은가. 요즘 노출이 심하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이처럼 요즘에는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로는 심각한 경기불황으로 인한 심리적인 요인이다. 서울에 소재한 K대학에 출강을 하는 심리학 박사 김모씨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욕구가 총족되지 않으면 그 외의 것으로라도 충족시키고자 하는 대리만족의 욕구가 있게 마련”이라며 “답답하고 짜증나는 현실을 시원하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노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판 ‘선녀’의 노출심리

너나 없이 노출패션을 즐기는 여성심리는 ‘나무꾼과 선녀’ 구도에서 분석되기도 한다. 선녀는 목욕을 하면서도 나무꾼이 엿보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는 것. 그런 만큼 노출은 여심의 자연스런 발로라는 이야기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적절한 수준의 노출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며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남성이 힘과 돈으로 여성을 유인하는 반면 여성 최고의 무기는 젊음과 미모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한 패션 관계자는 노출패션 유행의 일등공신으로 TV를 꼽는다. 방송가의 노출경쟁이 알게 모르게 여인들의 ‘아찔패션’에 불을 질렀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방송에서는 탱크톱에 핫팬츠는 기본이고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오락 프로그램에선 야외 수영장이나 놀이공원 코너가 봇물을 이루고 심지어 드라마에까지 이른바 수영장 신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이렇듯 너나 할 것 없는 노출경쟁에 힘입어 스파게티처럼 가느다란 어깨끈이 달린 러닝톱이 유행 아이템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올 여름 노출패션의 트렌드를 이룰 의류로는 란제리룩, 블리비지룩, 쇼트팬츠가 주목된다. 아찔하게 몸을 드러낸 여성들을 보며 남자들은 ‘그저 좋을 따름’이라는 표정이다. 덩달아 남성들의 눈길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직장인 이모(31)씨는 “별로 재미도 없는 세상에서 길거리의 여성들을 보면 한순간이나마 즐거움에 빠질 수 있다”며 “마치 느닷없이 주어지는 선물같은 청량감과 상쾌함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남성들 특유의 도덕적 이중성 때문에 일부는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최근 한 여성포털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여성의 노출에 대한 남자의 인식’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남자들은 여성의 노출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가 여성의 아슬아슬한 노출을 즐기면서도 도덕적으로 문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렇듯 노출패션이 흥행제품으로 인기를 끄는 것과 관련, 한 패션 전문가는 “히프라인과 배꼽의 노출은 하부적이지만 가슴 부위의 노출은 가장 적극적이며 직접적인 섹스 어필로 해석할 수 있다”며 “노출패션은 성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이 그만큼 과감해졌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어깨끈이 가늘어지다 못해 아예 없는 옷, 등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드러내는 자신감’이 곧 아름다움으로 통하는 노출시대의 현주소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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