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좋다”

새로운 번개가 유행 중이다. 예전처럼 단순히 친교를 하거나 혹은 이성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일명 ‘럭셔리 번개’, 혹은 ‘명품 번개’로 불린다. 만나는 목적은 단 하나. 룸살롱이나 요정 등 고급 술집에 가기 위한 것. 최근 유흥관련 사이트에서는 번개를 위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오늘 요정 가려고 합니다. 35세 이상 매너 좋은 남성분 연락주세요.’‘일주일째 술 못먹었습니다. 오늘 룸에서 한번 쏩시다. 저녁 7시 이후 핸드폰 때려주세요.’물론 이러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요즘과 같은 경기불황 속에서도 돈에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부동산업자, 일부 ‘잘 나가는’ 벤처기업 CEO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이 가는 코스는 대부분 비슷하다. 우선 일식집에서 간단히 ‘1차’를 마친 후 룸살롱이나 요정으로 이동, 본격적인 ‘유흥’이 시작되는 것. 룸살롱에서 질펀하게 논 후에는 당연히 ‘나가요걸’과의 2차로 직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왜 룸살롱을 가기 위해서 번개까지 하는 것일까. 이들의 나이는 대략 30대 중반 이상이 대부분. 그 정도의 나이면 선·후배며 동년배 친구들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달에 1~2회 정도는 ‘럭셔리 번개’를 한다는 최모씨(37)의 말이다. “경기불황 때문이다. 다들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불량자들이 된 친구들도 많고, 집에다 월급 가져다 주기도 힘든 친구들도 있다. 사업을 하는 선배들은 언제 부도가 날지 마음이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같이 룸살롱을 가자고 하겠는가. 설사 비용을 전부 내가 낸다고 하더라고, 괜히 돈 자랑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러니 서로 돈있는 사람끼리 번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특히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룸살롱 간다는 것 자체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괜히 아는 사람들과 동행했다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지고, 때로는 과장과 왜곡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 따라서 아예 전혀 모르는 사람과 ‘번개’를 통해서 가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고 ‘쿨’하다는 것이다. 벤처기업 CEO인 박모씨는 “요즘에는 조금만 돈의 여유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면 돈빌려달라는 사람들이 몰려든다”며 “따라서 속내는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사업이 안돼 힘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고급 술집에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비용은 사람의 숫자에 따라 나눠서 함께 부담하게 된다. 적게는 2명 정도가 가지만 많게는 4~5명이 번개를 위해 모이기도 한다고. 물론 고급 술집 역시 경기불황을 타기는 마찬가지. 따라서 이러한 럭셔리 번개에 대해서는 특별한 서비스를 해줄 수 밖에 없다.

나가요걸, 가죽가면 착용하는 라텍스 놀이 유행

역삼동에 위치한 룸살롱에서 속칭 ‘새끼마담’으로 일하는 박모양의 말이다. “요즘 경기는 최악이다. 문닫는 룸살롱도 한두군데가 아니고, 우리 가게도 저녁이 돼도 빈 방이 많다. 럭셔리 번개를 통해서 오는 사람들은 소위 브이아이피(VIP)급 손님에 속한다. 어차피 술값 눈치 안보고 먹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가장 대표적으로 밴드는 물론이고 귀가차량까지 무료로 해주는 것. 특히 럭셔리 번개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과음을 하기 때문에 콜택시를 불러주고 그 비용까지 룸살롱측에서 모두 대준다고 한다. 때로는 업주측에서 술 한병 정도는 공짜로 주기도 한다.

브이아이피급 손님에 대한 시원한 서비스인 셈이다. 또 최근에는 은밀한 ‘이색파티’를 주선하기도 한다. 이른바 ‘라텍스 놀이’. 이들에게 라텍스란 ‘가죽으로 된 가면’을 의미한다. 외국의 포르노 영상물에서는 ‘라텍스’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변태섹스 문화의 대표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손님과 ‘나가요걸’이 가죽으로 된 가면을 쓰고 술을 마신 후 즉석에서 매매춘까지 벌이는 것. 물론 고객이 룸살롱을 나갈 때까지 가면을 벗지 않아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여자가 있는 룸살롱에 가면서 왜 여자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아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럭셔리 번개족들은 차라리 바로 그점이 ‘라텍스 놀이’의 매력이라는 것. “룸살롱에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일일이 아가씨의 얼굴을 따질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서로 가죽을 쓰고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철저한 익명성이 보장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사실 또 그래야만 질펀하게 놀 수 있는 것 아니냐.”이러한 심리는 나가요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야하게 놀 바에야 차라리 얼굴을 가려야만 수치심도 덜 하다는 것. 룸살롱에서 일하는 최모양은 “사실 짓궂은 손님들을 만나면 기분도 나쁘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가면을 쓰면 얼굴 표정도 드러나지 않고 굴욕감도 덜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결국 그들만의 ‘럭셔리 번개’는 철저하게 퇴폐적이고 소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치성 유흥문화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직장인 이모씨는 “아무리 자기 돈 내고 자기가 술을 먹는다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좀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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