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월28일 교황 직을 8년 만에 자진 사퇴하고 로마의 바티칸을 떠났다.

독일 출신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2005년 4월이었다. 즉위 명은 베네딕토 16세로 하였고 교황 임기는 종신으로 가는 것이 관행이다. 1415년 그레고리우스 12세가 재위 9년만에 교황 참칭(僭稱)세력과의 갈등속에 사퇴한지 598년만의 일이다. 베네딕토의 사퇴 이유는 건강약화로 공식 선언되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심장박동기를 달고 살았다. 으례 대부분 노인들이 그렇듯이 그도 고혈압·관절염·심부전증·뇌졸중 등 질병을 앓고 있었다. 2011년 10월에는 체력 저하로 이동식 연단을 타고 미사에 참여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기도 했다.

베네딕토의 사퇴에는 건강문제 외의 다른 추측들도 무성했다. 바티칸 내 고위 성직자들의 경직성과 부패, 성직자들의 끊임없는 동성애 스캔들과 은폐, 배네딕토를 포함한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의 스캔들 대상자들에 대한 묵인과 관용에 대한 반발, 교황의 보수주의 노선에 대한 교회 내 진보세력의 불만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베네딕토는 건강이 나빠도, 성직자들의 동성애 스캔들이 마구 터져 나와도, 반대세력이 반발한다 해도, 종신 임기가 보장되었다는데서 사퇴하지 않아도 되었다. 중세기 말 교황 그레고리우스 12세가 직면했던 것과 같은 권력 내분은 전혀 없었다.

베네딕토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는 1927년 4월16일 독일에서 경찰관 아들로 태어났다. 1951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1953년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였다. 그는 1981년 교황청의 가톨릭 교리 장관을 지냈으며 2002년엔 추기경단 수장을 맡았다.

베네딕토는 선임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오른 팔” 역할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신뢰하는 친구”로 불렀으며 교황청 내에선 “부(副)교황”이라고 호칭되기도 했다.

특히 베네딕토는 1970-80년대 남미의 ‘해방신학’을 추종하는 가토릭 내 진보좌익 신부들을 통렬히 꾸짖었다. 그는 해방신학이 마르크스 사상에 물들고 폭력혁명을 추종한다면서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여성의 사제 서품, 동성애 결혼, 사제들의 결혼, 신도들의 이혼, 낙태 등도 단호히 거부하였다.

베네딕토의 보수성으로 인해 교회 진보 세력은 그를 못 마땅히 여겼다. 그의 퇴임을 계기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측도 있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가 2000년의 긴 역사속에 11억 신도를 거느리며 중세적 전통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는데서 세속적 변화 욕구에 가볍게 흔들릴 것 같지 않다. 21세기에도 전통적 카톨릭의 윤리적 가치는 요구된다.

베네딕토의 8년은 그의 소신에 찬 보수적 신념으로 신도들에게 믿음을 주었고 그들을 떠나지 않게 했다. 다른 개신교 종파의 신도들이 적지않게 교회를 떠났음을 상기하면, 그의 카톨릭 신도 유지는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가 21세기 초 카톨릭에 남긴 유산이다.

더욱이 베네딕토는 노욕(老慾) 없이 교황직을 자진 사퇴함으로써 귀중한 세속적 교훈을 남겼다. 그는 수백년 동안 보장되어 온 종신 교황 직을 미련 없이 털어버렸다. 그의 자진 사퇴는 죽을 때까지 권력과 재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세속적 속물 인간들에게 자괴(自愧)감을 금 할 수 없게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성직자로서 훌륭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동성애·부패 등으로 어수선하던 카톨릭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그의 확고한 보수적 소신과 노욕없는 사퇴 결단은 영원히 존중되고 평가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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