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안 관철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표출이 정국을 대결국면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소신과 신념 정치 구현을 위한 첫 시도는 역풍을 만났다. 처음부터 꼬인 연유는 야당의 고질적 몽니를 빼놓을 수 없지만, 박 대통령의 정치적 쟁점과 시기 선택이 적절치 못하였던데 기인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1주일 만인 3월 4일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주먹을 흔들며 야당을 압박했다. 박 대통령의 격한 표정에 맞서 민주통합당측은 “야당에 대한 투항 압박”, “소통 없는 독선”이라고 반격하였다. 일부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타협 정치의 실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연설을 단호하고 확실하게 잘 했다. 대통령에게는 그런 점이 있어야 한다”며 지지했다. 물론 대통령에게는 “그런 점이 있어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대통령은 ‘타협’한다며 소수 야당의 정략에 마냥 끌려 다녀선 안 된다. 소신껏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밀고가야 한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할 말을 했으면서도 국민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데는 까닭이 있다. 그가 취임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야당을 압박하고 나섰으며, 그가 야당에게 양보를 강요한 정부조직개편안 선택도 전략적으로 적절치 못하였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소신과 신념’의 정치 구현이다. 그는 취임 1주일 만에 소신과 신념의 정치를 서둘러 보여줄 수 있는 첫 쟁점으로 정부조직개편안 관철을 선택했다. 슬기롭지 못한 선택이었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안 관철을 물러 설수 없는 불퇴전의 과제라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역정까지 낸 것은 신중치 못했다. 모기 잡으려 대포를 들이댄 격이다. 우리 국민들은 17부 3처 17청의 정부조직개편안들 중에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소속 1개과(課) 업무중 일부에 불과한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대한 관할권 문제엔 관심이 없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경제 사회적 주요 쟁점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신념 표명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관심조차 별로 없는 방통위 SO 관할권 문제를 소신과 신념의 ‘절박한’ 대상으로 띄움으로써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확보에 실패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정치적 소신과 신념 표출의 대상으로 실생활과 연계된 문제를 잡았다. 대처는 고질적인 탄광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끝까지 거부, 굴복시켰다. 레이건은 공항 관제사들의 과도한 임금인상과 불법 파업을 가차 없이 다스렸다. 메르켈은 독일노조연맹의 최저임금제 인상과 회사경영참여 요구 등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은 국가경제와 국민생활 안전을 위협했던 화급한 문제들을 소신껏 척결함으로써 자국민 다수로부터 박수와 신뢰를 얻어냈다.
박 대통령도 소신과 신념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방통위 1개과 업무를 놓고 야당과 전면 대결할 필요가 없었다. 보다 더 크고 더 뜨거운 문제에 대통령의 소신과 신념을 걸어야 했다.
앞으로 대통령 앞에는 정치적 소신과 신념을 걸어야 할 더 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서둘지 말고 침착하게 정치적 쟁점과 시기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서둘면 반드시 빈틈이 생긴다’는 금언을 되새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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