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19일 즉위 미사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하며 가장 중요치 않은 사람들”을 섬기자고 강조하였다. 가난을 사랑하는 교황의 기본 사상을 천명한 대목이다. 그가 교황 즉위 명으로 800년 전의 성인 프란치스코 이름을 받아들인 이유를 엿보게 한다. 평생 가난한 사람을 섬긴 13세기 성인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 였다.
성인 프란치스코는 1181년 이탈리아의 아시스(Assis)에서 의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몸소 실천했다. 로마 순례 때 누더기 옷을 입고 거지 처럼 돈을 구걸하였으며 그렇게 얻은 돈은 거지와 나병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나병 환자들과 함께 자고 함께 식사하며 그들의 손에 키스 했다.
성인 프란치스코가 살던 시대에 가난한 자와 병자들에게 눈길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대주교와 추기경들은 호화로운 대 저택에서 살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맨땅이나 길바닥에서 잤다. 그는 1219년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회교 지역으로 들어가 회교 술탄(회교 군주)들을 만나 기독교 교리를 설교했다. 술탄에게 잡혀 처형될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성인 프란치스코는 예수의 삶 그대로 가난을 사랑하고 순회 설교를 하며 일생을 바쳤다. 누구도 그의 험난한 뒤를 따르지 못했다. 그가 1226년 임종할 때는 눈병으로 거의 장님상태 였다.
  21세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800년 전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즉위 명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저와 같이 실천하기 어려운 성인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이다. 중세기 프란치스코의 자기 희생적인 사랑은 그 후 널리 알려져 그의 이름을 딴 사례가 수없이 많다. 미국 서부의 대도시 샌프란시스코도 그를 기리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프란치스코 이후 800년 동안 어느 교황도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즉위 명으로 삼진 않았다. 그의 험난한 생을 실천할 자신이 없어서 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 즉위 명으로 받아들였다. 실상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으로 등극하기 전부터 프란치스코의 위대한 삶을 실천하려 애썼다.
베르고글리오는 이탈리아에서 이민한 철도 노동자의 5남매 중 막내로 아르헨티나에서 1936년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강단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강의 했다. 그는 196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 “겸손과 청빈의 대명사”로 통했다. 그는 오래 전에 한 쪽 폐를 제거하고 폐 하나로 살고 있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교구장 시절 교회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인자한 모습의 대교구장은 자동차나 운전사도 없이 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식사 조리도 자신이 손수 하였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뒤 2주간 머물 던 호텔 방으로 돌아갈 때도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소형 버스를 탔다. 직접 짐을 꾸려 체크아웃 하였고 숙박비도 계산했다.
로마 교황의 프란치스코 즉위 명 선택은 가시 밭 길을 걸었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숭고한 정신을 21세기 인류에게 되살려주었다는데서 의미가 크다. 오늘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하며 가장 중요치 않은 사람들”을 외면한 채 자기만 알며 환락에 빠져 흥청대는 속물인간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