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최은서기자]‘바쁨’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는 희노애락 그중에서도 몸과 마음의 불편이나 고통을 털어놓을 만한 가족, 이웃, 친구가 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통’과 ‘치유’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를 전면적으로 꺼내놓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못하다. 바야흐로 나를 위한 힐링이 아닌 모두를 위한 힐링이 필요한 시대다.

세상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누군가를 통해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좌절하고 뒤처지더라도 기다려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내면의 평화가 찾아들기 마련. [일요서울]은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치유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힐링피플을 매주 만난다. 첫 힐링피플은 ‘다문화’라는 말에 깔린 차별과 편견을 없애고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다.


-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영화배우로의 데뷔, 헌정사상 최초의 결혼이민 여성 국회의원으로 국회 입성까지 인생이 극적이다.


▲ 스스로 선택을 했다고 하기 보다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잡은 것뿐이다. 그 기회들 간에 여러 연결고리가 많았다. 예를 들어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주부가요열창’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이후 다큐멘터리 번역가, 방송패널 등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됐다. 또 한 영화에 엑스트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영화 ‘의형제’와 ‘완득이’에 출연하게 됐다. 특히 방송활동을 하다 만들게 된 이주여성단체 모임인 ‘물방울나눔회’가 국회의원이라는 기회를 가져다 준 것 같다.

-한국사회는 아직 다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한국 생활에서 여러 어려운 점을 느꼈을 것 같다.


▲ 힘들고 어려운 점을 빨리 잊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언어·문화적인 부분에서 적응이 어려웠다. 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고부갈등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95년에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 2000년대부터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의 시선이 생겨나기 시작해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만나게 된 사람도 ‘필리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남편 어떻게 만났냐’, ‘몇살 차이나냐’, ‘남편이 월급 얼마나 버냐’는 무례한 질문을 대놓고 했다. 시간이 지나니 이런 상황을 ‘유머’로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정치인을 꿈꿨었나.


▲ 사실 정치에 대한 꿈을 꾸지는 않았다. 정치를 할 것이란 생각조차 못했다. 이주민여성 단체를 운영하면서 2010년에 서울시 시의원 비례대표 제의를 받았다.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은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거절했다. 2년 뒤 다시 기회가 와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게 됐고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될 때라고 이야기 해 도전하게 된 것이다. 국회의원을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0.1%라도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시댁 식구들은 염려를 많이 하신다. 자녀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하신다. 필리핀 가족들에게는 괜한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 당선 전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당선 소식에 많이 놀라고 기뻐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정치인이 된 거냐’고 재차 물으며 신기해했다. 그래서 ‘한국에 다문화비례대표가 있어 다문화 구성원을 대표하기 위해 나서게 된 것’ 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한국에만 있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의아하게 여겼고 따로 다문화 관련 통계를 낸다는 것을 알고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 스스로 한국 사람이 다 됐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


▲ 아무래도 언어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어머니와 필리핀어로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땐 나 스스로도 한국어가 편안해졌구나라고 느낀다. 또 이주여성들의 문화적 갈등 등의 고민을 들을 때 양쪽 모두가 다 이해가 될 때도 한국사람 다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가끔 ‘필리핀에선 이럴 때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럼 이 방식이 한국 방식인지 필리핀 방식인지 혼돈이 온다. 한국생활 19년차로 필리핀에서 산만큼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의정활동의 초점은.


▲ 다문화를 대표해 국회에 입성한 만큼 다문화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다문화 외에도 북한이탈주민, 재외동포, 일본 위안부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초’라는 단어에 사실 어깨가 많이 무겁다. 내가 잘해야 두 번째, 세 번째도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이후 아무도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문화 정책은 11개 부처가 진행을 하는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기관을 만들어 계획부터 수립까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사업이다.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훨씬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고 정책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 정치인이 돼 국민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됐다. 소감은.


▲ 국회의원이 되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입법은 하되 시행은 정부부처 지자체에서 한다. 법안을 만들었을 때도 세부적으로 넣을 수 없다. 때문에 큰 틀일 뿐이고 시행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따라 법이 시행되고 국민에게 적용돼 많은 차이가 난다. 과거, 단체를 운영했을 때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시행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형식적이지만 상징성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이주여성들이 자부심을 많이 느낀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 같은 여성으로서 첫 여성대통령의 대한 생각은 어떤가.


▲ 외국을 가던 한국에서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이야기 한다. 국가의 발전이라고도 생각한다.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많이 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대통령이 돼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감을 얻었다고 본다. 한국에서 굉장한 큰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 끝으로 인생신조가 궁금하다.


▲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인생신조는 ‘의지가 있으면 방법이 있다’다.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굉장히 긍정적인 성격이다.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빨리빨리 사회에서 여유를 가지고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다. 내 주변사람들도 나에게 ‘완전 긍정파다. 아무도 못말려’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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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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