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안이 제출된지 52일 만인 3월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직개편안 지연 통과로 박근혜 정부는 출범 26일 만에야 비로서 정상적으로 가동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여야 정치권은 단순히 정부의 조직을 뜯어고치고 명칭을 바꾸기 위해 새 정부의 정상 가동을 4주씩이나 지연시켜야 했었는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17부 3처 17청 조직개편안들 중에는 지식경제부를 산업통상자원부로, 외교통상부를 외교부로, 교육과학기술부를 교육부로 일부 조직과 명칭을 변경하는 안들이 들어있었다. 여야 협상의 골칫걸이었던 방송통신위원회의 1개과 업무 중 일부를 신설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그동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영락없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였다. 정부조직은 건국 이후 중앙정부 차원에서만 무려 30여 차례나 바뀌었다. 상공부는 상공자원부-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새 부처명칭은 이름이 익숙해질 때 쯤 되면 또 바뀌어 다시 새 부처 이름에 친숙해지려면 오랜 시일이 걸려야 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부처 이름을 200여 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둔 경우가 많다.

부처 개명과 조직개편에는 막대한 돈이 들 뿐 아니라 업무 공백이 생겨 한동안 혼선을 빚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소속 공무원들이 이동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4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이 자리를 옮겨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변전하는 시대적 환경에 따라 새 부처를 신설하거나 재편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한 부처의 일부 조직을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떼었다 부쳤다 하면서 부처 명칭까지 바꿔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기존의 명칭아래 내부 조직 개편만으로 충분하다. 큰 실속도 없이 새 간판으로 새 정권에 새 희망을 걸게 하려는 정치인들의 기망적 한건주의에 연유한다.

명칭을 자주 바꾸는 폐단은 비단 행정부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정당들이 모두 그렇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만 해도 새누리당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으로, 자민련은 국민중심당-자유선진당 등으로 당명을 가라치웠다. 재야 운동권 출신 장기표씨는 1980년 민중당을 창당한 이래 작년 2월 녹색통일당을 내세움으로써 아홉 번 정당 이름을 만들어 냈다.

당명은 대체로 당의 대표가 교체되거나 총선 또는 대선을 앞두고 바뀐다. 특히 선거 때의 새 이름 짓기는 지난 날의 실패 족적을 세탁하고 희망찬 분위기로 겉 포장하기 위한데 있다. 정당의 잦은 당명 교체도 새 것을 갈구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악용한 기망적 작태다. 행정부나 정당들이 간판을 그토록 자주 가볍게 바꿔치는 행태에서 정치권의 후진성을 엿보게 한다. 정치인들이 행정이나 정치를 소신과 원칙대로 밀고 가지 못하고 가볍게 들뜨는 여론에 영합해 표류한다는 행태를 반영한다. 정치권이 포퓰리즘(대중영합인기몰이)에 끌려 다님을 뜻한다.

그밖에도 간판 바꿔 치기는 지난 날 우리 국민들의 후진적 정치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들이 내용이야 어떻든 새 간판에 새 기대와 흥미를 보였던데 기인한다. 잦은 개명은 국민들의 후진적인 정치의식과 정치권의 경망스러운 한건주의가 합작해 낸 불량품이다. 그러나 이제 정치권은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져 개명한다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간판 보다는 내용을 조용히 바꿔, 진솔한 창조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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