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한인사회가 ‘계 파동’으로 술렁이고 있다. 계주인 K씨가 잠적하는 바람에 계가 깨져 피해자가 속출한 것이다. 그 피해액만 무려 120여억원. 이와 관련‘계주인 K씨가 곗돈을 한국에 은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 최근 한국 검찰과 경찰도 수사에 들어갔다. 호주 ‘120여억원 계 파동’의 실체를 들여다봤다.“계주, 피해액 100억 한국 은닉 의혹”…경찰 등 수사 착수호주 경찰,“한국식‘계’불법, 증거 불충분”마무리 돼이웃들과 상부상조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계’조직. 농촌지역에서 아직도‘계’는 서민들의 목돈 마련의 큰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계’조직은 한국뿐 아니라 호주·미국 등 교민사회에서도 수십년 전부터 성행하고 있다. 교민사회에서 ‘계’가 성행하는 것은 현지 은행 이율이 너무나 낮기 때문이다.

교민들은 “돈을 은행에 저축할 경우 세금을 포함, 연 2%의 이자를 얻을 수 있는데 반해, ‘계’에 돈을 불입했을 경우에는 연 10% 이상의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위험부담이 큰데도 불구하고‘계’에 돈을 납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좋은 취지로 출발한 계지만,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발생한 호주 교민사회의 ‘계 파동’. 지난해 7월 ‘K씨 계’가 깨지면서 교포사회의 ‘신용’이 붕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 ‘K씨 계’로 인한 피해규모는 1,500만 호주달러(한화 약 120억원)에 이를 정도. 계주인 K씨는 호주 시드니 시내에서 ‘마켓’을 운영했고, 교포사회에서 신용이 두터웠던 인물. 이런 교포사회의 신용을 바탕으로 K씨는 지난 80년대부터 ‘계주’를 하면서 상당수의 교민들을‘계’조직에 끌어들였다.

그간 ‘K씨 계’는 규모도 크고 신용도 좋아 계원을 골라서 받았을 정도로 호주 교민사회에서는 유명했다. ‘K씨 계’는 2,000 호주달러를 매월 불입하며 10만 호주달러를 받는 ‘낙찰계’형식이다. 그러나 K씨가 지난해 7월에 3개월간 한국으로 잠적하면서, 잘 나가던 ‘K씨 계’는 결국 깨지고 말았다. ‘K씨 계’의 피해자들은 “은행이율이 적은 점을 이용, ‘호주은행보다 자신을 통해 돈을 저축하면 돈을 불릴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며 “이로 인해 계원들이 약 600여만 호주달러(48억여원)의 손해를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들은 “K씨가 연 18∼24%의 높은 이자를 계산해 주겠다고 속이고 교민 70여명으로부터 900만호주달러(92억원)의 사채를 끌어 모았고, 이를 갚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K씨 계’의 피해자들은 대개 ‘청소일’ ‘이삿짐 센터 잡부’등 일용직 근로자들로 근근히 생활하는 교포들이 대부분. ‘K씨 계’ 수습대책위원회의 박명순 대표는 “피해자들은 대개 생계가 어려운 교포들이다. 특히 정부의 생계보조금으로 곗돈을 불입해 온 노인들도 상당수 포함됐다”며 “800만원부터 많게는 8억원에 이르기까지 사기를 당한 교민 피해자들은 밤잠을 못 이루며 억울함과 금전적 어려움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토로했다.사고 발생 후, 피해자들은 시드니 주재 한국 영사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현지 호주 경찰에도 신고를 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수습대책위의 박 대표에 따르면, 계원들의 비협조적인 분위기 때문에 현지 경찰이 원하는 증거들을 제시하지 못했고, 현지 경찰에서는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이 마무리 됐다는 것. 박씨는“현지 경찰에‘돈’의 출처 및 성격에 대해 조사를 받을 경우, 더 큰 피해를 우려하는 계원들이 많았다”며 “또 한국식 ‘계’가 호주 내에서는 적법한 것이 아니다.

이에 피해자들이 경찰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몇몇 피해자들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며 “‘계’·‘사채’사기 등으로 인한 교포사회의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모든 대응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특히 피해자들은 “금융시스템이 투명한 호주에서는 재산은닉이 어려운 만큼, K씨가 한국의 친척 이름으로 한국 내에 재산을 은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대표 등은 “K씨의 재산이 호주 현지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K씨는 ‘나중에 벌어서 갚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라고 말했다.이어 “K씨가‘계 사기’를 통해 모은 돈 100여억원을 한국의 친인척 등의 명의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 많은 돈이 하늘로 증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K씨의 한국내 재산추적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K씨 계 수습대책 위원회’의 박명순 대표 등이 한국에 들어와 경찰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사방으로 뛰어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박 대표 등은 현재 경찰청에 K씨와 K씨의 친인척 등 2명에 대해 배임 및 사기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고, 청와대 민원실에 진정서를 냈다.그러나 현재 수사를 담당한 경찰 등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용인경찰서 한 관계자는 “K씨에 대해 배임죄 등의 적용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지만, 현재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라며 “이번 호주의 ‘계’사건의 경우 한국의 ‘계’와 달리, 곗돈을 불입했다는 장부가 거의 없다. 이에 피해 본 사실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이어 “확실한 물증이 나오면 인터폴과 협조, K씨의 소환 및 재산추적 등 수사를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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