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공’ 어쩌다 공무원 됐으니 그 입 다물라!

장경상 행정관 사퇴, 친박-관료 주도권 다툼 서막 올라
어공 “보고서 쓰러 왔냐” VS 늘공 “정책 만들 역량 안돼”

[일요서울 박형남 기자]청와대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늘공(늘 공무원인 사람들)’과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들의 기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대응 전략, 인사 문제에 있어 서로 마찰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도권 싸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5일 국정기획수석실의 장경상 행정관이 사표를 낸 것 역시 이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친박 그룹)과 늘공(늘 공무원인 사람들=관료 그룹)의 기싸움이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일 국정기획실 장경상 행정관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부터다. 주로 정무와 일정·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2007년 대선 때에 이어 당선인 비서실에서 일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활약한 인사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인선을 할 때도 일찌감치 그 자리에 낙점됐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생활을 함께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인사문제·위기 대응논리 등 어공-늘공 불협화음
장 행정관은 “아이와 함께 유학을 준비할 생각이며 다른 이유는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일각에서는 “행시 출신인 유민봉 수석과 마찰을 빚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유 수석은 관료 출신으로서 관료들을 신뢰할 뿐 친박 인사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친박 인사들의 말을 관료 그룹이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논공행상’에 불과할 뿐 박근혜 정부를 이끄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관료 그룹들의 생각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에 관료 출신들을 상당수 배치했고, 청와대는 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관료 그룹이 주도를 하고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게 나온다. 이와 함께 비서진들을 관료 위주로 꾸리면서 이들의 입김이 거세졌다. 자연스럽게 친박 그룹들의 입지는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친박계 한 관계자는 “대선에서 친박 그룹들과 함께 싸웠다면 집권 이후에는 관료 그룹과 일하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인사 사고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친박 그룹 사이에선 “국면을 타개할 돌파구나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 낼 주도 세력이 청와대에 많지 않다”는 불만이 쏟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관료 그룹을 향한 비판이었던 것. 

청와대 민정수석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와대 내에서도 엄연히 실세가 존재한다. 특히 친박 그룹과 관료 그룹의 주도권 싸움은 치열하다. 인사 문제를 놓고 서로 간의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누구 하나도 밀리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라며 “두 그룹간의 전쟁이 도를 넘어, 청와대 내에서도 어느 그룹이 이길까 궁금해 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고 전했다. 어공과 늘공간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못해 피 말리는 승부를 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실제 무엇을 두고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단연 인사 문제가 그렇다. 친박 그룹에서는 박 대통령을 위해 뛴 인사들을 중심으로 기관들의 기강을 다잡고, 박근혜 공약 위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길 원하지만 관료 그룹에서는 내부 인사들을 중용시켜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작 박 대통령은 관료 그룹에 손을 들어줬다. 장·차관 인선도 관료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에는 이상목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2차관에는 윤종록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소 교수가 각각 임명됐다. 국방부 차관에는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해양수산부 차관에는 수산 전문가인 손재학 국립수산과학원장이 기용됐다. 국무총리 정책 보좌를 담당하는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에는 거시 및 재정 전문가인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본부장, 금융위 부위원장에는 정찬우 금융연구원 부원장 등 관료들을 대거 발탁했다.

또 국정운영 대응 전략을 놓고도 마찰을 빚고 있다. 인사 참사 문제로 인해 친박 그룹에서는 전 정권에 대한 사정론을 들었지만 관료 그룹에서는 사정론은 단기용 카드에 불과할 뿐 정책 등을 중시하면서 위기를 돌파하자는 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그룹과 관료 그룹의 주도권 싸움은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충성 게임’으로까지 비춰지고 있는 양상이다.

친박 그룹 수석과 관료 그룹 수석들 간의 마찰은 급기야 행정관과 공무원 그룹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관료 그룹에 힘을 실어주면서 당에서 온 보좌진들은 울상이다.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캠프에서 활약하다 청와대에 근무 중인 한 행정관은 “하루 종일 관료들의 지시를 받으며, 보고서만 쓰다가 퇴근한다”고 호소했다.

대선 당시 보좌관 출신들은 현안에 대한 보고서 및 대응 논리 등을 작성하면서 박근혜 정부 탄생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선임행정관, 비서관, 수석비서관들이 관료 출신들인데다 일부는 국회에서 온 인사들이다. 이로 인해 행정관 인선을 놓고 친박 그룹과 관료 그룹이 서로 다른 인사를 추천해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한 행정관에 따르면 관료 출신 수석들이 비서관만 데리고 회의를 하다보니 국회에서 온 행정관들은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말하지 못한 채 묵묵히 시키는 일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의 지침이 한몫했다. “대선 참모 보좌진들의 급수를 높게 주지 말라”고 말했던 것. 결과적으로 보고서만 작성하고 시간을 보내고 출퇴근하는 관료들 특유의 업무 스타일로 인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는 인수위 시절 때부터 예고됐던 갈등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인수위에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관료 출신들은 박 대통령의 공약 사항보다는 조직 배 불리기에 앞장 서는 경우가 많다”며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 박근혜 공약을 놓고 친박-관료들간의 말싸움이 하루도 잘 날이 없었다. 관료들은 친박 인사들을 무시하고, 친박 인사들 역시 관료들을 무시하면서 마찰을 빚었다”고 귀띔했다.

인수위 때부터 예고된 갈등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정무감각이 뛰어난 친박 그룹 대신 관료들만 신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한 관계자는 “관료들은 청와대에서 승진하려는 생각이 많지만 친박 그룹은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라며 “대선 참모 출신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료 출신들이 몇가지 사고를 치면 자연스럽게 친박 그룹에 힘이 실릴 것”이라며 “기회를 엿보기 위해선 기다려야 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에 반해 관료출신들은 “참모들이 각종 정책을 수립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관료 중심이 불가피하다”고 말해 친박 그룹과 관료그룹간의 기싸움은 한 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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