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이후 꾸준한 증가세 … 하루평균 36명 ‘극단적 선택’‘생활고 비관’이 가장 큰 요인 … 빈곤층 정책 재검토 절실청소년 자살 증가는 ‘자살사이트’영향도 커‘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대한민국 사회가 잇따른 자살사건으로 충격에 빠져있다. 생활고에 찌든 극빈층의 일가족 동반자살, 성적을 비관한 아들의 자살충격을 벗지 못한 아버지의 자살, 현대그룹의 적자로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던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신분과 계층을 불문하고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자살신드롬까지 번지고 있는 그 실태를 짚어 보았다.

“저는 남자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할 30입니다. 그런데, 전 요즘 삶을 포기하고픈 생각이 종종 듭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죠. 변변한 직장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항상 상처받는 삶을 살아왔죠. 그래도, 전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없는 것 짜내서 남들에게 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젠 정말 지쳤습니다. 피곤한 삶을 마감하고 싶네요. 전 소망이 없습니다. 제가 죽었다고 슬퍼할 사람도 없고 제가 없어도 세상은 그저 흘러갈 겁니다. 저 역시 한줌 흙이 되어 흘러가렵니다.”

“차라리 죽었으면…”이라는 제목으로 한 30대 남성이 <생명의 전화>인터넷 상담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최근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실제 자살을 하고 있는 건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총 자살 건수는 모두 1만 3,055건. 이는 2001년 1만 2,277건에 비해 6.3% 증가한 수치다. 하루 평균 36명, 1시간 당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 1998년 IMF 사태로 1만 2,458건에 이르렀던 자살 건수는 99년 1만 1,713건으로 줄었다가 2000년(1만 1,794건)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연령별로는 남자는 30대와 60대, 여자는 50대와 60대가 많다. 특히 30대의 자살이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2000년 2,444건, 2001년 2,446건, 2002년 2,655건으로 치솟고 있다. 자살은 또 여성이 남성보다 3∼4배나 많이 시도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살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남성이 여성의 3∼4 배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기혼자의 자살률이 가장 낮고, 결혼 뒤 사별·이혼한 사람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특히 과부보다 홀아비의 자살률이 2∼3배 높다. 중산층 보단 사회적 지위가 아주 낮거나 아주 높은 사람의 자살률이 높다. 직업별로는 의사, 법관, 음악가 등 전문직 종사자와 무직·실직자의 자살이 많은 편이다. 특이한 점은 농어민들의 자살률도 만만치 않다는 것. 실제 통계청 2001년 직업별 자살자수(총 6,933명)에서 무직자(3,237명)에 이어 농어민(949명)이 많았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서울 생명의 전화 관계자는 “무직자나, 노동,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반 봉급자나 공무원처럼 안정된 직업이 있는 사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적 안정성이 자살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전남의 한 농민단체 관계자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농어민의 경우 농가부채에 대한 압박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감 등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살 이유로는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최근에도 빈곤으로 인한 자살이 2000년 454명, 2001년 525명, 2002년 600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업 실패에 따른 자살도 2000년 786건에서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 등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추세다.

특히 국내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취업난에 따른 취업 재수생의 인생비관, 40대 직장인들의 명퇴와 정리해고, 사업실패로 인한 좌절감 등이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문제연구센터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어 빈곤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특히 취업난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좌절감은 스스로를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고 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자살 역시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성적비관이 주원인이지만, 학교내 집단 따돌림 ‘왕따’를 비관한 자살이 늘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접속한 뒤 신병을 비관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숫자도 증가추세.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자살사이트들은 구체적인 자살방법이 자세하게 나와있고, 심지어 일부 사이트는 자살을 찬미하기도 한다”면서 “심리적인 동요가 큰 청소년들이 이를 보게 될 경우 흔들릴 수 있으며 실제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경우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헝가리, 핀란드 등 유럽국가와 러시아가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도 약물중독, 우울증에 시달린 젊은이들의 자살이 늘고 있는 것.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유럽 국가들 가운데 평온한 나라 스위스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반면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국가들인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자살률은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한편 최근의 자살문제에 대해 생명의 전화 관계자는 “자살을 단지 한 개인의 불행으로 단정해서는 안된다”며 “자살에 이르게 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배경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어섰다고 자랑하기에 앞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빈곤층에 대한 정책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자살기도의 예후■ 평소 아끼던 물건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이 심해진다.■ 너무 많이 자거나 너무 적게 잔다.■ 외적 용모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 친구 관계에 소홀해진다.■ 전에는 좋아하던 사회활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학교나 직장에서 제대로 공부나 일을 하지 못한다.■ 권태스러워 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집중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증상이 우울증의 증상과 비슷하다.■ ”아무도 쓸모 없어.”, “도대체 되는 일이 없어.”, “죽어버리면 끝나는 일이야.” ■ ”인생은 결국 허망한 것이야.” “나 같은 것은 차라리 없어져야 사람들이 편할 거야” 라는 등의 말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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