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그레한 육질…혀 끝에 살살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삶의 무료함을 느낀다면 새벽시장에 가란 말이 있다. 상인들의 생기 있고 활기찬 모습에 잃었던 기운을 되찾을 수 있어서다. 요즘엔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재래시장이 맛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특히 100년의 역사를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시장인 ‘광장시장’이 그 메카가 되고 있다.

사방으로 뚫린 시장 입구부터 이어진 길은 좁다.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힐 때도 있다. 그래도 서로 웃으며 지나간다. 이리저리 신기한 듯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에 기분이 상기돼서일까. 상기된 마음으로 길 따라 걷다보면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들이 마법처럼 나타난다.
 
광장시장엔 ‘광장5미(味)’가 있다. 빈대떡, 마약김밥, 순대, 동그랑땡 그리고 육회가 그 주인공이다. 이것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먹자골목은 젊은 층 사이에선 일명 ‘광장뷔페’로 통한다. 발길 닿는 곳에서 그저 원하는 음식을 먹으면 되니깐.
 
걷다보면 기름 지글거리는 철판 위에 노릇하게 익어 탑처럼 쌓인 빈대떡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되는 듯 자꾸 찾게 돼서 불리기 시작한 마약김밥. 아기 팔뚝만한 놀라운 비주얼의 왕순대. 돼지 목살을 동그랗게 썰어 이름 붙여진 동그랑땡. 붉은 빛깔의 매혹적인 육회까지. 눈길, 발길 돌리는 곳마다 군침이 돌아 뭘 먼저 먹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마저 든다.
 
메뉴선택이 어렵다면 고민하지 말고 과감히 육회를 먹어보자. 먹자골목 안쪽에 위치한 육회골목. 그곳의 터줏대감 ‘부촌’(대표 박동진·02-2267-1831)의 육회가 굶주린 위장에 아찔한 맛을 선사할 것이다.
 
들어서면 푸근한 인상의 주인내외가 반가운 인사로 맞아준다.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바빠도 친절한 인사는 빠지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 육회를 기다리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단골손님들의 이야기가 사랑방 같은 정겨움을 만들어낸다. 
 
이 집이 광장시장에 자리 잡은 지도 50년째. 밤낮으로 시장상인들의 밥상을 책임지다보니 상인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그래서 육회만 파는 육회전문점을 지향하기보다는 해장국, 설렁탕, 갈비탕 등 식사메뉴도 판매 중이다. 
 
1956년 어머니가 시작한 식당을 박 대표가 이어받은 건 1980년도. 당시 이 골목 최초로 전라도식 육회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육회로 변형시켰다. 붉은 소고기 위에 계란 노른자를 띄운 군침 도는 육회가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맛과 신뢰로 하루에 방문하는 손님만 300명 이상. 연령층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이 골목 터줏대감답게 단골손님도 많다. 신규손님을 다 수용하지 못할 정도라고. 
 
“나이 어린 사람들이 술 취해서 나한테 예의 없게 굴거나 하면 단골들이 나서서 먼저 상황 정리를 해줘요. 내가 말주변도 별로 없어서 농담도 잘 못하는데 우리 집을 오랫동안 찾아줘서 이제는 다들 한 가족들 같지요”
 
이 집이 육회뿐 아니라 식사 메뉴도 판매 중인 이유도 단골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한테 ‘육회만 안 팔고 왜 다른 음식도 같이 합니까’하고 많이들 물어봐요. 나도 육회만 팔아야지 하다가도 국물 맛보러 찾아오는 단골들 생각하면 딱 잘라 변화를 주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요.”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처럼 음식 맛도 좋다. ‘양념이 대한민국 기본이니 양념만 제대로 하면 맛이 난다’는 박 대표의 지론처럼 정직한 맛으로 50년 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곳에서 저렴하고 분위기 좋은 육회를 즐겨보길 바란다.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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