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범 꼬리에 만원 훔치자 징역 2년·보호감호 3년 8개월감호소내 직업훈련 전시행정용 … 자격증 실생활에 무용지물 “우리는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생활을 했어요”.징역 5년을 선고받고 또다시 사회보호법에 의해 청송보호감호소에서 5년형을 살고 지난 1월 출소한 어느 출소자의 말이다. 청송감호소 피감호자들이 최근‘사회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사회보호법’과 관련한 논란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감호소 피감호자들과 출소자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인권침해 생활상을 공개하며 “사회보호법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지난달 23일부터 3일까지 경북 청송 감호소 피감호자들 700여명은 사회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지난해에도 세 번씩이나 단식 농성을 벌인 바 있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수십명이 탈진증세를 보이며 외부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들이 극한 단식투쟁을 벌이는 이유는 무얼까. 피감호자들은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의 악랄함과 인권침해를 고발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회보호법의 폐지다.사회보호법은 지난 80년 신군부가 상습 강력범들을 교육시킨다는 취지에서 국보위 입법으로 제정됐다. 폭력·강도 등 강력범죄를 두차례 이상 저지른 사람이 다시 같은 종류의 죄를 범했을 경우 교도소 복역 후 보호감호소에 다시 수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수용기간은 최장 7년. 이 법은 제정후 지난 23년간 사회·시민단체 등으로부터‘반인권악법의 대명사’로 지목돼 왔다. 인권단체와 피감호자 및 출소자들은 “사회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상습범’, ‘재범의 위험성’이란 모호한 잣대로 피감호자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며 “이에 따라 감호소를 거쳐간 이들은 온전하게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채, 영원한 사회낙오자가 됐다. 이는 ‘교화’라는 위선의 탈을 쓴 보호감호제도의 필연적 결과”라며 ‘사회보호법 폐지’을 주장해 왔다.

이들이 우선 ‘사회보호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중처벌’등의 인권문제. 이들은 “교도소에서 죄값을 다 치렀는데 ‘재범 우려’만으로 다시 처벌을 받는 것이 분명한 인권 침해”라는 입장이다.지난 3일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주최로 열린 ‘청송보호감호소 출소자 기자회견’에서 출소자들의 절규는 처절했다.지난달 23일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출소한 J씨(46)는 “20만원 훔친 ‘죄’로 20여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며 자신의 피맺힌 한을 토로했다. 그는 “1만원을 훔친 것이 20년의 감옥생활로 이어졌다”며 “범죄자라는 부끄러움보다는 보호감호소의 실상과 사회보호법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 증언하게 됐다”고 참석사유를 밝혔다. J씨는 12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다 가정형편으로 인해 19살 이후에는 혼자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리고 21살이던 지난 79년 처음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됐다. 출소 후 다시 석달만에 친구들과 소매치기로 9만원을 훔쳐 징역 2년을 또 살아야 했다. 이후부터 그에게는 ‘상습범’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으며, 보호처분을 받아야 했다. 지난 82년 1만원을 훔쳐 징역 2년에 3년8개월의 보호감호생활을 마치고 88년 4월 출소했다. 하지만 같은해 6월 9만7,000원을 훔친 혐의로 또다시 붙잡혀, 교도소에서 2년, 감호소에서 6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96년 또 교도소와 보호감호소에서 5년 6개월을 보내야 했다.그는 “20년전 하루 500원이던 근로보상금이 현재도 3,000원이 채 안된다”면서 “5~6년을 보호감호소에 있어도 50여만원을 손에 쥐게 돼 밖으로 나와도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호감호를 마친 또 다른 출소자들은 보호감호소 내 직업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J씨는 보호감호소에서 건축, 목공, 이용사 등 5개의 자격증을 따고 출소 뒤 일자리를 찾았지만 아직도 직업을 얻지 못했다며 감호소내 직업훈련이 전시행정용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J씨는 “보호감호소내 직업훈련은 기술력이 떨어져 자격증을 따도 사회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며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갱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시행정용일 뿐이다. 실제로는 쓸 수가 없는 것들 뿐”이라고 비난했다. 또다른 A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징역 5년, 감호 5년을 선고받고 지난 1월 출소한 A씨는 “감호소 안에서 열심히 하면 사회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만 믿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했다”며 “자동차 정비 자격증, 타일 자격증을 땄고, 초등학교 학력으로 고등학교 검정 고시도 합격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에서 이런 자격증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A씨는 “감호소 안에 있는 자동차도 옛날 보지도 못한 자동차를 가져다 놓고 연습을 하니 밖에 나와 써먹을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A씨는 사회에 나와보니 물가를 몰라 항상 가격을 물어보게 되고 공통 관심사를 갖지 못해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얘기는 교도소 생활에 관한 것들 뿐. A씨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다시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재활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처럼 사회보호법의 인권침해 사례가 점차 사회문제화되자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보호감호 기간 상한선 축소 등을 골자로 한 사회보호법 개정안을 마련,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정안에는 ▲대도시 인근 보호감호시설 신설 ▲ 피감호자의 외부 기업 통근 등 사회접촉 기회 확대 ▲ 근로보상금 인상 등이 포함됐다. 공대위 등 시민단체들은 “보호감호소는 인권의 사각지대로서 열악한 시설과 질 낮은 직업교육, 그리고 형편없는 근로보상금 등 ‘감옥의 연장선’에 불과하며, 오히려 사회로 향하는 피보호감호자들의 발걸음을 묶어두고 있다”며 사회보호법의 완전 폐지를 거듭 촉구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