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언론매체들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가 구사한 영어 수준에 대해 너무 헤플 정도로 후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박 대통령이 5월 8일 미국 상·하원합동회의에서 행한 연설과 관련, 동아일보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신문은 5월10일자에서 ‘워싱턴도 놀란 朴 대통령 영어…“하원의장 보다 났네” 조크’ 라고 주먹만한 글자로 제목을 뽑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영어 실력은 ‘워싱턴도 놀란 영어’라고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미국측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반응을 보였듯이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낫다”는 정도이다. 영어 통역사로 일 해온 임향옥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도 “기대 수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역대 대통령들 보다 잘 했다”라고 평가했을 뿐이다.

역대 대통령들 중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영어만은 미국인 영어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유창하였다. 그는 20세 때부터 배제학당 영어교사를 지냈고 29세에는 고종의 밀서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41년간 거기서 살며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는 미국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등 공부도 제대로 했다. ‘워싱턴도 놀란 영어’라고 극찬하려면 적어도 이승만 박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영어 연설은 외교부가 초안을 잡았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과 연설비서관실 등이 수정하였다. 최종안은 외부의 감수를 받았다. 그 이전 역대 대통령들의 영어연설은 미국의 연설문 전문업체 등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전문 업체에 4만6500달러를 주고 미 의회·국빈만찬·오찬 등 연설문안을 의뢰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영어 연설은 발음과 억양에서 또박 또박 잘 읽었다고 할 수준이다. 어린 시절 청와대에서 과외교사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데 연유한다.

박 대통령은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역없이 백악관의 로즈가든을 거닐며 10분간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이 그와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들의 대화 음성이 공개되지 않아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4월1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워싱턴 근교 캠프데이비드에서 골프카트를 몰며 대화를 나눈 음성은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영어를 한국 언론매체들은 ‘MB식 영어’ ‘워킹(현장)영어’라며 그가 영어로 분위기 살렸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08년 4월 22일자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이 ‘구사하는 영어단어 수는 많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거나,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고 측근의 말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영어는 발음과 억양에서 영락없는 “콩글리쉬(한국식 영어)”였다. 이 대통령은 “그가 나의 손님이다”를 “He is a guest”라고 했다. 뜻은 통한다만 “a guest”가 아니라 “my guest”로 했어야 옳다. 그는 또 “how to”라고 했어야 할 자리에 “know-how”로, “found”로 과거형 단어를 썼어야 할 때 현재형 “find”로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는 이 대통령 보다 더 콩글리쉬였다. 그도 1998년 6월 10일 상·하원합동회의를 비롯 여러 차례 영어 연설문을 낭독했다. 발음과 억양이 듣기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매체들은 그의 영어에 대해 매우 잘한다며 헤프게 점수를 매겼다.

물론 우리 대통령들이 영어를 반드시 유창하게 구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간 영어를 ‘워싱턴이 놀란 영어’라고 극찬한 것은 언론으로서 신뢰를 떨어트린 과장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론 너무 헤프게 평가 말고 신중하고 정확하게 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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