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최은서 기자] 2011년 10월 한 의사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영원하다. 故 박준철 씨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인체 조직’을 기증하고 떠난 최초의 의사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자신의 온 몸을 기증해 100명의 환자에게 새 삶을 열어줬다. 고인은 생전에 의사라는 직업을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천직으로 여기며 국내와 국외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다녀 지인들로부터 ‘천사 의사’로 불렸다. 아버지가 이웃을 돕는 삶을 보고 자란 그의 어린 막내아들은 ‘아빠가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하늘나라로 간 것’이라 믿고 있다. [일요서울]은 황망한 상황 속에서도 남편의 생전 뜻을 받들어 인체 조직 기증을 결정했던 그의 아내 송미경(49)씨를 만나 고인을 회고했다.


46살의 종합병원 일반외과 과장이었던 고 박준철 씨는 2011년 10월 6일 병원 회식자리에서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아내 송미경 씨는 “마지막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자. 세상을 떠나게 되면 시신을 기증하고 싶다”고 했던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인체 조직 기증을 결정했다. 인체 조직 기증은 장기에 속하지 않는 뼈, 연골, 피부, 근막, 인대 및 건, 심장판막, 양막, 각막 등 인체 조직을 사후에 기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시신 겉모습 훼손이 크다는 이유로 사회적 거부감이 커 선진국에 비해 기증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인체조직 기증자 수는 2009년 기준 인구 100만 명당 3명에 그쳐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계속 이어지는 꿈

송씨는 아직도 남편이 떠난 그 날이 생생하다. 2004년 둘째 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낸 후 맞닥뜨린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들 부부에게는 당시 10살이던 둘째 아들이 방충망이 쳐 있던 창가에서 친구들과 놀다 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난 ‘상처’가 있었다. 송씨는 “둘째 아들을 보낸 이후 내 인생에 갑작스런 이별은 두 번 다시 없을 줄 알았다. 우리에게는 함께 보낼 많은 날들이 있을 줄만 알았다. 남편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다. 소리만 웅성웅성 들리고 눈앞이 캄캄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나와 남편은 평소 노년을 많이 꿈꿨다. 노부부가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늙어가자고 약속하곤 했었다. 이 꿈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질 줄은 몰랐다. 병간호를 하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다 보내는 것과 예고 없이 잃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다. 잃고 나서야 더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둘도 없는 고맙고 좋은 사람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넘치고 넘친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이 사망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황망히 병원에 있던 그녀에게 평소 고인의 선행을 알고 있었던 남편의 동료의사가 인체조직 기증을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고인은 국내 봉사 뿐 아니라 자비를 들여 필리핀과 아프리카에 의료봉사를 했던 가슴 따뜻한 의사였다. 그녀는 “인체 조직 기증을 권유하는 말을 듣자마자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암전이 된 것 같았던 머릿속에서 평소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시신을 기증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시어머니께도 여쭤보니 ‘아들의 뜻을 따르고 싶다’며 허락해주셨다. 아마 남편도 당연히 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송씨 또한 남편의 뜻을 이어 사후 인체 조직 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고인이 기증한 인체 조직으로 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100명의 환자들이 제2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녀는 “인체 기증 코디네이터의 설명을 받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지는 생각도 못했다. 남편의 가는 길이 기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그의 꿈은 중단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꿈은 자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또 그에게서 ‘온기’를 전해 받은 100명의 환자들도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을 것이다. 큰 딸 혜진(22)씨는 아이들에게 함께 사는 세상을 가르치기 위해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 예찬군은 의사가 돼 아버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부재가 준 상실감

둘째 아들과 남편이 연이어 곁을 떠나면서 다섯이었던 가족은 셋으로 줄었다. 부재가 주는 상실감은 상당했다. 막내아들은 종종 ‘나는 아빠가 필요한데 왜 아빠가 갔을까’라며 원망 섞인 물음을 하곤 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송씨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빠의 생명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에 하느님이 자신의 곁으로 부른 것이다. 아빠는 너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아줄까 생각했고 너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아빠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가 잘 이겨내리라 믿으면서 하늘나라로 갔을 거다. 아빠는 우리가 가야할 마지막 곳에 가 있으니 다시 만날 날까지 이 시간을 함께 잘 견디자. 아빠가 이젠 영혼으로 너를 지켜주고 있을 테니 아빠에게 떳떳한 아들이 돼라”라고 이야기하며 아들의 아픈 마음을 토닥여준다.

그녀는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굉장히 크다. 아버지를 대신해 감사패를 대신 받았는데 굉장히 뿌듯해했다. 자녀가 부모를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남편은 늘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유산은 믿음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고 전하며 아들이 밝고 씩씩하게 크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송씨 역시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부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눈을 뜨면 눈앞에 있을 것만 같아 제어할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송씨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시련을 겪을 때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제발 꿈이기를 바라고,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만 자꾸 생겨난다. 그런데 그렇게 거부할수록 슬픔은 자꾸 커져 쓰나미처럼 날 덮쳐왔다. 현실을 받아들일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 같다”며 잠시 말문을 멈췄다.

그녀는 이어 “아이와 남편의 일을 통해서도 그렇고 인생에는 ‘왜’라는 물음이 자꾸 따라다닌다. 차라리 날 데려가지라는 원망스런 마음만 들었다. 항상 함께이고 싶었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사실 힘들 때는 세상사람 어느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어려움이 있을 때 손잡아주고 울어주며 함께 아파해주는 것만이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끝으로 “두 번의 아픔을 겪으면서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 외롭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의지했기 때문에 상실감은 말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가족, 이웃, 친구가 곁에 있었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따뜻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과 자신은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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