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명직 맡지 않겠다’ 속내는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박근혜 정권이 출범한지 100일이 지났다. 여권 일각에서조차 ‘한 2년 흘렀는 줄 알았는데...’라고 평할 정도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10월 재보선 그리고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은 이렇다할 간판이 없다는 점에서 고심이 깊다. 한 마디로 ‘선거의 여왕’의 빈자리가 갈수록 커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포스트 박근혜’ 자리를 메꾸는 것 역시 대통령의 심경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사안이다. 당장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정무장관제 부활’을 제안했다가 ‘특정 인물 키우기’로 인식돼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포스트 박근혜’를 키울 수밖에 없는 게 정치적 현실이다. 야권의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등 쟁쟁한 대권 예비주자에 맞서 대항마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원외 인사인 안대희 카드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최근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기자단과 만난 오찬 자리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고심을 털어냈다. 홍 총장은 “서울과 경기 모두 만만치 않다. 서울이나 경기 지역에 대해선 ‘저런 훌륭한 사람을 모셔왔구나’ 하는 아이콘이 있어야 하는 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홍 총장은 “들리는 얘기로 원희룡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다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현재로선 박원순 서울시장 인기를 추월할 만한 사람이…” 라고 말했다. 홍 총장은 일각에서 나오는 김황식, 안대희 서울시장 카드에 대해 즉답을 피하면서 “호남 후보를 공천하면 제일 좋다(김)”, “뭐 좋은 카드(안)”라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안대희 카드 박원순 대항마로 박근혜 ‘견제’?
김 전 총리에 대해선 호평을 한 반면 안 전 대법관 카드는 ‘무난하다’는 상이한 평을 내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을 서울시장으로 내보내기엔 당내 반발이 클 수밖에 없고 경선을 거쳐야 하는 만큼 통과 자체가 불확실한 현실이다. 또한 친이계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원 역시 서울시장 출마의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도 높다. 반면 노무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안 전 대법관이지만 지난 박근혜 캠프에서 박 후보가 삼고초려해 영입한 케이스로 당과 청와대에서 서울시장 후보감으로 적극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는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인 2012년 7월 초부터 안 전 대법관을 영입하기위해 노력했다. 경선이 한참 진행중이던 7월 말경에는 직접 만나 영입을 제의했으나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안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후에도 박 후보는 거듭 안 전 대법관을 만나 설득했고 끝내 ‘독립된 권한’을 전제로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박 후보가 이처럼 안 위원장의 영입에 공을 들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안 위원장은 이미 2006년 6월 국회 대법관 인사 청문회에서 흠결이 유일하게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호평을 받은 인사다. 검찰 재직 시절 재산 공개에서는 전 재산이 2억 5천만원으로 검찰내에서 꼴찌를 기록할 정도로 청렴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2009년 대법관 시절 공개된 재산 역시 7억 6천만원대로 대법관 가운데 꼴찌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17회 동기이기도 한 안 전 대법관은 검찰내에서 ‘특수통’으로 통할 정도로 유명인물이다. 25세 때 최연소 검사로 임용된 안 전 대법관이 ‘국민검사’로 주목을 받은 것은 중수부장 시절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으로 만들었고 천막 당사 시대를 열게 한 장본인이다. 또한 고 노 전 대통령의 측근까지 구속시키면서 성역 없는 수사로 유명세를 탔다.

특히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에는 홀연히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당시 집권 여당내에서는 차기 총리설부터 감사원장 등 핵심 인사가 있을 때마다 안 전 대법관의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은 “내 임무가 끝났으니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박근혜 정부 5년간 대통령이 임명하는 어떤 자리도 맡지 않겠다”고 밝혀 재차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안 전 대법관은 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는 7월1일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일반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하지만 여당내에선 임명직은 안되더라도 적극 요청할 경우 선출직에는 안 전 대법관이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서울시장 출마설이 가장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안 전 대법관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10월 재보선 출마설도 나오고 있지만 당안팎에선 서울시장 차출론이 가장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다”면서 “박 시장과 맞짱을 떠 승리할 수 있는 대항마로 안대희 카드가 주목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고 시인했다. 또한 그는 “안 전 대법관 입장에서도 10월 재보선 출마해 뱃지를 다는 것보다 서울 시장 출마를 통해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르는 게 향후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0월 재보선, 서대문을 출마설 ‘솔솔’
반면 서울시장 출마에 당선 여부를 떠나 그 도전 자체가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내 비토세력이 나타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측근 그룹입장에서 집권초기에 ‘포스트 박근혜’로 특정 인물이 주목받을 경우 국정 운영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몽준-이재오-김문수 등 여당내 비박 내지 반박 진영에서 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로 ‘안대희 카드’가 활용될 경우 안 전 대법관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역시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안 전 대법관 주변에선 ‘청와대 견제’를 받기쉬운 서울시장 출마보다는 10월 재보선 출마가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때 재보선 예상 출마 지역으로 안 전 대법관의 고향이기도 한 경상남도 함안-합천-의령(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의 경우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2심에서 의원직 유지형을 받으면서 물 건너갔다. 이어 나온 곳이 바로 서대문을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지역구다. 정 의원은 실형선고를 받아 의원직 상실이 유력한 상황이다. 안 전 대법관이 중앙정치에 대한 꿈이 있는 이상 서울에서 출마해 당선되는 것이 향후 대권 출마를 위해서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안 전 대법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사석에서 “나는 박근혜 정부 출범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고, 이 정부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다”며 재보선이나 지방선거 출마설을 적극 부인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 안 전 대법관은 공식적으로는 정치적 언행을 삼가면서 강의와 특강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공직 활동후 영리사업 제한으로 미뤘던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예정이다. 안 전 대법관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가시화될 전망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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