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서울의 젖줄’ 팔당호가 세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적이 있었다. 9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지로 별 볼일 없던 팔당호 주변이 관심을 끈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빼어난 경관이 알려지면서 재벌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대거 별장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은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적 거주지를 찾아 이곳으로 모여든 것이 이유였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땅값은 하루아침에 수배씩 뛰는 등 투기꾼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되면서 팔당호는 하루가 다르게 썩어가기 시작했다. 난개발과 주변에서 흘러드는 오폐수로 서울의 젖줄은 망가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더 이상 팔당호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지역을 수질보존지역이라는 특구로 묶었다. 그 후 15년 뒤인 지금, 팔당호 주변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 홍석현 주미대사가 팔당호 근처에 위치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장을 구입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지역이 새삼 많은 사람들의 관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과 서종면, 남양주시 조안면에 밀집한 ‘팔당호 주변 별장’들을 집중 취재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본다.

최근 <일요서울>이 확인한 결과 팔당호 주변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별장들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고, 오히려 재벌이나 유력인사들이 더 많이 모여들면서 별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한동안 세인들의 이목에서 멀어졌던 이 지역은 아예 드러내놓고 산을 깎고, 집을 지어대고 있다.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는 별장 한 채가 신축 중에 있다. 문호리에서는 일명 ‘현대별장’으로 통하는 이 별장은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의 별장이다. 지난 해 11월부터 공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이 별장은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고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한적한 분위기와 함께 팔당호가 바로 앞에 있는 이 별장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2층으로 짓고 있는 세칭 ‘정몽규 별장’은 다른 주택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상수원 보호지역인 이 일대는 건물 신축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지만 ‘정몽규 별장’은 건축법 등에 대한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양평군청 측은 “현대별장 공사현장 지역은 비도시지역으로서 200㎡ 내에서는 신고나 허가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며 “현대별장은 현재 200㎡ 미만으로 건축하고 있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공사현장은 공사 중 발생하는 쓰레기 등 환경오염 물질을 철저히 관리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사 초기의 소음문제는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별장 근처에 산다는 한 주민은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때는 중장비 소리 등으로 약간 시끄러웠다”며 “내가 민감해서인지 조금은 짜증스러웠다고”전했다. 또 다른 주민은 “어떤 건물을 짓든지 초기에는 어느 정도 소음은 있는 것 아니겠냐”며 “공사가 금방 끝날 것 같아 특별히 공사현장에 항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별장의 공사는 5월 말쯤 완공될 것이라고 공사현장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정몽규 별장이 지어지고 있는 바로 옆에는 갑을방직의 박창호 사장의 별장이 있다. 박 사장의 별장은 팔당호변에 있다. 이 별장의 대문을 나서면 길옆으로 낚시터가 있어 강태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 팔당호변에 있는 몇 몇 별장들이 강으로 생활오수를 흘려보내 문제된 바 있다. 현재는 오수정화 장치를 설치한 별장들이 많아 과거와 같은 문제점은 없다고 한다.

박 사장의 별장 주변으로 낚시를 자주 온다는 한 낚시꾼은 “별장에서 오수를 흘려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별장 대문 앞의 길에 생활쓰레기 등이 있는 것을 봤다”며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그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려 낚시터 강가로 떨어진다”고 전했다. 또 이 낚시꾼은 “그 생활쓰레기들이 별장에서 나온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양평군 양수리에는 부라더미싱의 홍승표 사장의 별장과 한올제약의 김성욱 대표이사의 형인 김성수 한올제약 고문의 별장이 있다. 이 별장들은 서로 이웃 사이. 이 별장들의 주변 분위기는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홍 회장의 별장은 그리 호화스럽지는 않은 아담하게 보이는 별장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팔당호 변에 있어 좋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과거 홍 회장의 별장에서 오수를 팔당호에 흘려보내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다. 그러나 별장 주변의 주민들은 “최근에는 오수를 흘려보내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홍 회장의 별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김 고문의 별장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이 별장에는 김 고문과 김 대표의 가족들이 자주 방문해 휴식을 취한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양수리의 한 주민은 “양수리에는 별장들이 많아 주말에는 이곳을 찾아오는 고급 승용차들이 많다”며 “어느 별장인지는 모르겠으나 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별장 마당에서 갈비 굽는 냄새가 나 주말에도 일하는 자신의 처지가 별장에 놀러온 사람과 비교 된다”고 말했다. 북한강 상류지역인 설악면 입구에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별장이 여전히 그대로 있고, H그룹 K 회장의 별장도 그대로 있었다. 대성리에서 북한강 맞은편에 위치한 서종면 소재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별장지는 지금은 소유주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4천여평에 가까운 이 땅은 당시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 명의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A씨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이경숙 코오롱스포렉스 전 대표의 별장은 양수리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대표의 별장에 대해 양평군청 측은 “이 전 대표의 별장은 그곳이 그린벨트로 지정되기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아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양평군청 측은 또 “그린벨트로 지정되기 전에 건축허가를 받아 지은 건물일지라도 그린벨트로 지정되면 신축, 리모델링을 할 때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이 전 대표의 별장은 건축 이후 변동사항이 없다”고 덧붙였다.양평군청 측은 그린벨트 지역의 불법건축이나 난개발로 인한 환경오염 등을 단속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우선 그린벨트지역을 단속할 때 개인의 재산권과 충돌하는 일이 자주 벌어져 강압적으로 단속하기 힘들다는 것이다.예전에 비해 최근에는 개인재산권의 보호가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단속의 어려움 중 또다른 요인은 단속인원 부족이다. 양평군청의 단속인원은 단 한 명뿐인 것으로 전해져 인원 보충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평지역의 그린벨트와 난개발 단속을 담당하는 양평군청 도시과 이상근씨는 “팔당호를 비롯한 넓은 양평지역을 혼자서 단속하기는 너무 힘들다”며 ‘홀로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한편 국립환경연구원 산하 한강물환경연구소는 “지난 1998년 ‘팔당호 대책’이 마련된 후 팔당호의 수질은 오염 비율과 농도가 감소해 많이 좋아졌다”며 “팔당호에 위치한 별장이나 식당 등에서의 오염물질 배출은 많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물연구소는 “예전에 비해 팔당호의 오염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난개발 등으로 오염물질이 배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지자체에서 강력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