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11일 한밤중 오피스텔 무슨 일이…”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국정원 댓글 사건을 두고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일단 여야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의혹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직권남용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현재 재판중인 두 인사가 증인으로 나설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국정조사의 발단이 된 작년 12월11일 국정원 여직원과 민주당 당직자간 오피스텔 대치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초기 대응을 잘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마저 나오면서 김이 더 빠진 형국이다. 과연 2012년 12월 11일 그날 밤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방문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 당직자
민주당은 작년 12월11일날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정원 3차장실 심리정보국 소속 직원이 이 오피스텔에서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수개월간 불법 선거 개입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는 문재인 대선 캠프 실무자들이 전직 국정원 직원 제보를 통해 확인한 상황이었다. 사실일 경우 국기문란에다 대선 성패에 영향을 줄 메가톤급 폭로였다. 당시 박빙 양상을 보이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는 대형 호재사건이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겐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강남 오피스텔 3분만에 나온 이유는...
이에 민주당에서는 중앙선관위 관계자와 경찰을 대동하고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가 거주하는 강남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한달 넘게 민주당 실무팀이 국정원 여직원을 미행하고 급기야 자동차 고의 추돌을 일으켜 알아낸 주소지였다. 도착 시간은 오후 6시50분경. 처음 현장에 도착한 인사는 총 4명으로 당 법률지원을 맡은 민주당 당직자 A씨와 선관위 관계자 2명, 그리고 경찰 1명이었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오피스텔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해당 오피스텔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인기척조차 없었다.

20분후인 7시10분쯤 문제의 국정원 여직원이 집에 도착했다. 국정원 직원인지를 묻는 선관위 관계자들의 질문에 국정원 여직원은 “아니다”로 발뺌했다. 일단 선관위 관계자와 경찰, 그리고 민주당 당직자는 전후사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함께 오피스텔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3분간 방안을 돌아본 이들은 ‘별 문제가 없다’는 듯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것이 결정적인 화근이었다. 이후 국정원 여직원은 문을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경찰은 신분을 확인하기위해 그녀에게 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정원 여직원은 문을 잠근 채 일절 응답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거주자가 자발적으로 신원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는 이상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강제로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치 상황이 길어지자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 취재진들까지 몰려와 방문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 경찰, 당직자들이 확인 못했던 묘령의 여성이 국정원 여직원임이 밝혀졌다.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거짓말임이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취재를 나온 언론사들이 국정원의 공식 입장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날 국정원은 밤 9시30분 이례적으로 보도 자료를 통해 “이 오피스텔은 국정원 직원의 개인 거주지”라고 밝혔다.

제보 상황이 뒤늦게 사실임을 깨달은 민주당 당직자들은 “국정원이 불법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장소임이 분명하다”며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현장을 확인해 달라”고 거세게 요구했다. 하지만 버스가 떠난 후였다. 이후에도 대치 상황은 계속됐고 국정원 여직원은 그 사이 자기가 올렸던 댓글을 삭제하고 있었다. 답답했던 민주당 한 당직자는 꾀를 내 “응답이 없는 걸 보니 집안에 사람이 죽어 있는 것 같다”고 119에 신고를 했고 구급대원 10여명이 출동했지만 문을 열지 못한 채 돌아가야만 했다.

국정원 여직원 신분확인 못했나 안했나
한때 국정원 여직원이 ‘경찰에 협조하겠다’, ‘가족들을 불러달라’고 해 대치상황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민주당 당직자와 경찰에게 “영장이 있어야 조사에 응할 수 있다”, “취재 카메라가 있어 얼굴이 노출될 수 있다”는 등 갖은 빌미를 대며 밤샘 대치가 이뤄졌다.

결국 다음날인 12월 12일 민주당 당직자와 경찰, 선관위 직원은 관련 자료를 입수하지 못한 채 새벽에 모두 철수했고 사흘을 더 버틴 국정원 여직원은 12월 13일 자신의 컴퓨터와 노트북 한대를 경찰에 넘기고 곧바로 민주당과 당직자들을 상대로 불법 감금 및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대선 3일전인 16일 경찰 중간 수사를 발표했다.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 대선 관련 댓글 흔적 발견 못했다”고 밝히면서 민주당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고 75.8%라는 비교적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110만표(3.53%) 차이로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제보가 사실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지만 재판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청장 모두 불구속 기소처분을 내리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여기까지가 세간에 알려진 내용이다. 실제는 그날 밤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당시 현장에 있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민주당 지도부의 초기 대응이 얼마나 미숙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 당직자 1명이 출동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당 진상조사위에 참석한 선관위 인사가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 인사는 “당시 우리는 불법 선거를 하는 전화방이 오피스텔에 운영되고 있다고 민주당으로부터 신고를 받았다”며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전화기는 보이지 않고 컴퓨터 한 대와 노트북뿐이 없더라”고 증언했다.

그는 이어 “신고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함께 간 민주당 당직자에게 확인을 했는데 그 인사 역시 제보가 잘못된 것으로 알고 ‘나가자’는 말에 동의를 해 방을 빠져나오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달 넘게 제보와 추적을 한 민주당 실무자 노력이 허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특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선거 개입 의혹이 불법 전화방 운영으로 신고됐다는 점도 당 지도부와 실무자간 소통이 불통이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처음에 도착한 경찰과 선관위 직원, 민주당 당직자가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에게 신분증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제시하지 않았을 때 의심을 가졌어야만 했다. 통상 신분증을 경찰이 요구할 경우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민주당 지도부가 해당 당직자의 말을 신뢰해 국정원 여직원임을 확신했고 국정원 여직원의 방에 들어갔을 때 컴퓨터와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면, 대선판은 어떻게 됐을까. 민주당 당직자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이제 공은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로 넘어갔다. 갈길은 멀다. 제일 민감한 부분이 증인 채택건이다. 민주당은 남재준 국정원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전·현직 간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했다.

국정조사 핵심 ‘증인채택’ 결과 미지수
또 작년 12월 16일 경찰 수사 발표 과정에서 김 전 청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권영세 주중 대사와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등도 불러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김무성 당시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 역시 포함될 전망이다. 반면 새누리당 측은 ‘국정원 전 직원 비례대표 주겠다’는 약속한 부분인 매관매직 의혹과 관련해 당시 문재인 후보와 김부겸 본부장을 불러내겠는 입장이다.

국정조사가 과거처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위해선 핵심 인사들의 출석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재판중인 원 전 국정원장, 김 전 청장, 그리고 차기 당권.대권을 노리는 김무성 의원과 주중 대사로 있는 권 대사가 순순히 이에 응할 지는 미지수다. 반면 문재인 의원과 현재 외국에 나가 있는 김 전 의원측은 새누리당 의원이 나올 경우 출석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향후 국정조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노 전 대통령 NLL발언 폭로와 더불어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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