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리듬 트로트로 ‘바람’ 일으킨 건 바로 나”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가수 설운도(55)는 아직도 1집을 내던 1983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설운도는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던 20대 때는 나이도 안 먹을 줄 알았다. 근데 어느덧 이렇게 나이를 먹어 30년 중견 가수가 됐다”며 껄껄 웃었다. 그의 노래 대부분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누이’ ‘다함께 차차차’ ‘쌈바의 여인’ ‘여자여자여자’ ‘춘자야’ 등 그의 히트곡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의 노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4/4박자 리듬으로 온 국민들을 흥겹게 하는 트로트와 웃고 울며 동거동락한 설운도를 만나 그의 가수 인생을 들어봤다.

청바지에 하얀색 티셔츠, 운동화 차림으로 빙긋이 웃으며 아내 이수진씨가 운영하는 서울 한남동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설운도의 모습에서 ‘트로트 사대천왕’(태진아, 송대관, 현철, 설운도)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눈빛과 목소리, 화려한 무대매너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보다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미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백기가 밑거름 돼

설운도 역시 무명시절이 없지 않았다. 5~6년간 무명시절을 겪고 있던 그에게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은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의 노래 ‘잃어버린 30년’은 이 프로그램 테마송으로 수십 만 이산가족과 안방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 역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이 곡은 지금의 설운도를 있게 만들었다. 이 곡은 하루 만에 녹음하고 그 다음날 히트 친 기록으로 기네스 북에 올랐다. 설운도는 “이 곡의 원곡은 아버지다. 멜로디가 좋아 가사를 조금 바꾸기로 했는데 당시 매니저의 아이디어로 특별 생방송에 부르게 됐다”며 “역사적 현장인 이산가족찾기에서 부른 이 노래는 분위기에도 잘 어울렸고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어 누구든 안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곡은 나에게 굉장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가수로서도 굉장히 영광된 일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장르도 아닌 트로트가요가 특별한 일로 기네스 등재된 것은 모든 트로트가수의 위상이 올라간 일인 것 같다”고 밝혔다.

설운도는 이 곡으로 단박에 ‘국민가수’가 됐지만 그의 30년 가수 인생이 늘 ‘맑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땡볕이 내리 쬐기도 했고,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그 해 KBS 가요대상 7대 가수상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불과 1년만인 1984년 매니저와의 마찰로 일본에서 도피 아닌 도피생활을 하게 됐다. 정상에 오르기가 무섭게 3년간의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 것. 그는 이 시기를 가장 힘들었지만 자신을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설운도는 “일본에서는 아무도 날 알아보지 않아 마음은 편했다. 일본에 도착해서 ‘어제까지의 설운도는 없다. 만약 내가 다시 설운도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치겠다’라는 다짐을 했다. 3년 내내 가수로서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며 “3년간 일본에서 음악 공부에 몰두한 것이 설운도만의 음악세계를 만들 수 있게 해 트로트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천이 됐다. 아픔과 힘듦, 고난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주저앉거나 흐지부지 시간만 보내 잃어버린 30년 한 곡만 남기고 떠난 가수가 됐을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반전’ 기대하라

그는 3년간의 공백을 딛고 1988년 재기에 성공했다. 그가 발표한 곡들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1990년대 초반 ‘트로트 4대 가수’로 꼽혔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그가 사랑하는 곡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잃어버린 30년’ ‘누이’ ‘사랑의 트위스트’ 이 세곡을 꼽았다. 설운도는 “‘잃어버린 30년’은 온 국민을 울린 아픔이 서린 곡이다. ‘누이’는 정말 이 시대에 있었던 동생들을 위해 자기 모든 걸 바쳐 가정을 일구어낸 누나들을 노래한 것이다. ‘사랑의 트위스트’는 젊은 시절 자신을 잊지 못하는 향수를 달래고 힘든 세상살이를 노래를 통해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역사적 아픔, 눈물, 한을 노래하는 무거운 트로트가 사랑을 받아왔다. 내가 일본을 다녀온 뒤 ‘여자여자여자’ ‘다함께 차차차’ ‘쌈바’ ‘사랑의 트위스트’ 등 그동안 트로트계에 없었던 새로운 리듬을 창조해 바람을 일으켰다. 무거운 리듬을 허물고 젊어지고 리듬감 넘치는 트로트로 젊은 층과 교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틈을 타 장윤정과 박현빈 같은 후배들이 새로운 음악으로 트로트 환경을 바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또 다른 반전’을 꿈꾸고 있다. 조용필의 화려한 귀환을 보며 그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설운도는 “조용필 선배의 이번 앨범의 음악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그가 해오던 음악이 아니라 반전 같은 음악을 들고 나왔다. 그의 음악을 보고 자극을 받았고 ‘힌트’를 얻었다”며 “시대에 관계없이 새롭게 구상할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의 가수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제 색다른 트로트에 도전해봐야 할 때다. 독특하고 새로운 것으로 트로트의 새 문을 열 것이다. 반전 같은 음악을 들고 나타날테니 기대해 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늘 한결같은, ‘초심’을 잃지 않는 가수다. 그는 “올해로 데뷔 30년이다. 30년 경력을 가졌다고 해도 계속적인 음악 연구를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 항상 새로운 신인은 물밀 듯이 나오고 있고, 노력이 없다면 내가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걸 늘 명심하고 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그는 “늘 프로페셔널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늘 팬들에게 신선한 가수로 머물기 위해 건강을 첫째로 한다. 또 건강하고 당당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남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애를 쓴다. 무대에 설 때마다 나의 숨은 에너지를 어떻게 좀 더 발산할 것인가에 주력한다”고 밝혔다.

그는 트로트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3사 방송국에 정통가요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다. 무대가 있어야 노래를 부르고 활동을 할 것 아닌가. 형평성있는 프로그램 구성이 절실하다”라면서도 “트로트가 많이 신선하고 좋아졌다. 트로트가 대중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고 새로워진다면 말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늘리게 돼 있다. 우리의 노력 역시 필요한 것 같다. 새롭게 도전하고 또 도전해 트로트 역사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트로트계 선후배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끝으로 “어느 분야이든 장인은 위대하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스타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 같다. 노력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기회는 누구한테나 주어지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열심히 사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인내와 끈기로 부단한 노력만이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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