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 성적 소수자(이하 레즈비언)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일반인과 다른 성적 성향을 지닌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쉽게 수용되지 못하는 ‘그들만의 약점’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범죄이다. 사건의 대부분은’아웃팅’을 빌미로 하여 주로 협박이나 금품갈취, 강간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레즈비언을 상대로 한 이러한 범죄는 레즈비언들이 신고를 꺼리는 것을 악용하여 단순한 협박에서 그치지 않고 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실태를 들여다봤다.

아웃팅 빌미로 협박
‘아웃팅’이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 성적소수 인권단체인’끼리끼리’에서 활동하는 간사 K씨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아웃팅을 빌미로 한 범죄에 대해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살해하는 서구의’동성애 혐오범죄’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이어서 “아웃팅을 빌미로 한 범죄는 과거부터 줄곧 있어왔지만 피해자들이 스스로 성적 성향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그 피해 규모나 실태에 대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인 레즈비언들을 상대로 한 협박 및 강간 등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심각한 수준의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끼리끼리’의 게시판에는 동성애자임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으로 피해를 당하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의 글이 하루에도 여러 건 올라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례에 대한 상담이 부쩍 늘었다. ‘끼리끼리’의 한 관계자는 “단체의 성격상 자세한 사건 내막에 대해서는 답변해줄 수 없다”면서 “최근들어 레즈비언들을 대상으로 한 아웃팅 협박 및 관련 범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폭로하겠다”협박
최근 레즈비언에 대한 아웃팅 협박범죄는 주로 ‘기자’나 ‘프리랜서’를 사칭한 남성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고 있거나 타인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이 알려지기를 유난히 두려워하는 10~20대 초반의 레즈비언들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은 “동성애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거나 “동성애를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말로 접근하여 인터뷰나 만남을 강요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 레즈비언들의 심리를 오히려 역이용하여 인터뷰에 응하지 않거나 만남을 거부하는 경우 “가족이나 학교, 심지어 직장에까지 폭로하겠다”, “사회에서 영영 매장시키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엄연한 ‘범죄’
레즈비언을 상대로 한 범죄는 피해사례 신고율의 저조로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레즈비언 인권 연구소와 ‘끼리끼리’는 공동으로 지난 1월부터 2개월간 서울과 부산에 사는 20~30대 레즈비언 561명을 대상으로 ‘레즈비언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커밍아웃 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약 73%가량이 “그럴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커밍아웃 하지 않는 이유에는 동성애라는 성적 정체성으로 인한 피해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사결과 전체 설문대상의 23%정도가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피해경험은 성적 정체성으로 인한 인간관계 및 조직 내에서의 갈등 및 불이익에서부터 협박, 성폭력, 금품갈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K씨는 “고의적인 아웃팅은 물론이고 악의없이 당하는 아웃팅도 당사자의 인생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서 “아웃팅은 엄연한 범죄”라고 말했다.

수사과정서도 인권침해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단기간에 단순한 협박정도에서 그치는 수위를 넘어 장기적이고 연쇄적인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끼리끼리’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과거에도 동성애 범죄가 분명히 존재해왔음에도 이슈화되지 않은 이유로 “동성애자, 특히 레즈비언의 경우에는 사회에서 그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K씨는 “레즈비언의 경우 자신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리기 때문에 피해를 입고도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서 “특히 경찰 조사과정에서 2,3차로 인권침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법제도적 차원에서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동성애가 하나의’자연스런 성적 취향’으로 인정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심리적 변화가 수반될 때 비로소 동성애와 관련한 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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