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정국 돌아가는 상황이 뭐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만든다. 국정원의 ‘NLL 대화록’ 공개 파문만 해도 어느새 본질 문제는 덮어지고, 국정원의 정치적 판단이나 정치개입이 핵심적 논제로 불길이 옮겨 붙은 상태다. 때는 이때다 싶게 대선 패배 후 침묵 기조를 유지하던 좌파 세력이 국정원 규탄 깃발 아래 결집하는 양상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빼어난 전략이 우파 열 명이 좌파 한 명을 감당키 어렵다는 말을 확인케 하는 요술단지 같은 정국이다. 친노 세력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 직후 했던 “NLL을 변경하더라도 헌법을 위배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NLL 안 건드리고 왔습니다”라는 발언을 3분짜리 분량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촛불집회에서 교본으로 상영하고 있다.

누가 봐도 궁색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강변이다. 이렇게 논란의 본질을 빠져나가는 친노세력의 마술 같은 정치공법으로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 망령을 되살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반보수세력 전반에 진하게 깔려있다. 반보수 연합이 힘을 합해서 검찰수사 중인 ‘국정원 댓글녀 사건’까지 총력전을 펼치면 NLL 폭탄은 굉음만 요란한 ‘오발탄’에 그치고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마저 흔들 수 있다는 서슬이 퍼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댓글 사건’과 관련해서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강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 문제에 대해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 남재준 국정원장의 NLL 대화록 공개가 일어나 상황이 복잡해졌으나, 청와대는 별 동요가 없는 빛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연해 하는 까닭이 있다. 가장 중요한 팩트는 이명박 정권이 차라리 야당이 집권하면 했지, 박근혜의 승리를 위해 국정원을 동원할리 없다는 점을 많은 국민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 과정에 동교동계 2진이 박근혜 후보 진영으로 속속 귀순하는 모습에 손에 땀을 쥔 이명박 정부의 전 총리 정운찬 씨가 상도동계 좌장 김덕룡 전 의원과 쌍을 이뤄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으로 박 후보의 ‘국민통합’ 불길을 잡으려 한 동작을 유권자들이 똑똑히 목도 했을 것이란 믿음이 청와대에 없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원세훈 씨가 선거판 NLL발언록 공개를 단호히 거부하는 강단을 보이면서, 선거막바지 ‘댓글녀’ 사단이 일어난 정황이 야당에게 관권선거 시비로 역전의 기회를 주기위한,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느슨한 역공작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당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며 ‘리틀 이명박’으로 불릴 만큼 MB핵심측근에 속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선거개입 공작을 했다고는 야당 사람들조차 속으로 비소(誹笑)하고 있을게다.

먼지투성이의 MB맨들 로서는 문재인 진영이 집권하면 NLL대화록 등 적잖게 자신들의 안전을 ‘딜’ 할 ‘꺼리’가 있지만, 털어 먼지 안 나는 원칙주의 모델 박근혜 집권은 그 자체가 공포였을 것이다. 이걸 모를 사람이 별반 없지 싶은데 참 이상한 정국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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