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비자금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60)이 지난해 11월 1일 비밀리에 입국했다가 한달여 뒤인 12월 10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씨는 국내에 머무는 동안 대검 중수부에 출석, 극비리에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일요서울>이 김씨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 한 결과 드러났다. 김씨는 권노갑 현대비자금 수수의혹과 관련, 현재까지 해외 도피중인 김영완씨와 함께 현대 비자금의 전모를 밝혀 줄 핵심 인물이다. 김씨는 권노갑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2003년 7월, 현대상선을 통해 권노갑씨에게 전달됐다는 3,000만불(실제로는 2,500만불)에 대한 송금영수증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최근까지 줄곧 도피생활을 해 왔다. 검찰은 현대 비자금의 전모를 밝혀 줄 김씨에 대해 소환, 조사를 벌여 놓고도 2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조사내용에 대해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김씨는 검찰 조사를 마친 지난해 12월 10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해 검찰의 묵인아래 출국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대검 중수부(중수1과장 유재만)는 지난해 11월 중순 해외도피중인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을 소환, 극비리에 조사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권노갑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2003년 7월 31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 1년 5개월여간의 도피생활을 접고 지난해 11월 1일 비밀리에 귀국했다. 검찰은 김씨를 상대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200억원이 전달된 과정과 이와는 별도로 현대비자금에서 권씨에게 전달된 의혹을 사고 있는 미화 2,500만불(한화 300억원 상당), 정몽헌 회장의 자살 경위 등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검찰은 김씨가 미국에서 확보한 것으로 나타난 현대비자금 2,500만불 송금영수증과 관련, 해외 계좌번호 및 송·수신인, 조성과정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김충식씨가 지난해 11월 중순경 비밀리에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며 “현대 비자금 2,500만불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이와 관련 “김충식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는지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현대 비자금과 관련, 마지막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2,500만불에 대해 핵심 인사를 소환, 조사를 벌여 놓고도 2개월여가 넘은 현재까지 조사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더구나 김씨는 검찰 조사가 끝난 지난해 12월 10일, 미국으로 다시 출국해 검찰의 묵인하에 출국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김씨는 김영완씨와 더불어 현대 비자금의 전모를 밝혀 줄 핵심인물인데다 현대 비자금 2,500만불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00년 1월경 권노갑씨를 만나 현대에서 총선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며칠 후 정 회장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부터 김영완씨가 알려준 해외계좌번호를 받아 김충식씨한테 건네주었고, 김씨는 현대상선 미주법인 지사장 박재영 전무에게 지시해 정 회장이 일러준 해외계좌로 송금하도록 했다. 그러나 금품 수수의혹을 사고 있는 권씨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검찰로서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뒷받침해 줄 증거자료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김씨가 미국의 지인을 통해 보관중인 송금영수증이다. 이 송금영수증에는 해외계좌번호를 비롯, 송·수신인 이름 등이 기재돼 있어 2,500만불을 둘러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검찰은 이에 따라 당시 대북 송금 사건으로 출국 금지돼 있던 김씨에 대해 이례적으로 출국금지 해제를 해 준 뒤 일종의 귀국보증인으로 법무법인 김&장 소속의 조준형 변호사를 대동해 미국으로의 출국을 허가했다. 물론 송금영수증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조건이었다.


김씨는 함께 출국한 조 변호사를 통해 미국의 지인으로부터 영수증을 찾았다는 내용과 함께 송금일자 및 액수 등을 검찰에 통보해 주었다. 검찰이 조 변호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은 송금일자가 2000년 2월 26일이었고 스위스 연방은행에서 송금됐으며, 송금액수는 2,500만불이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계좌번호와 송·수신인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조 변호사는 “한국 시간으로 8월 4일 아침 9시 10분에 다시 통화한 후 사무실로 팩스 송부하겠다”고만 밝히고 즉답을 회피했다. 그러나 검찰은 다음날 아침에도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날 아침 6시경 정 회장이 투신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됐고, 정 회장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김씨는 송금영수증제출을 거부한 채 잠적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김씨의 도피생활과 함께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던 현대 비자금 사건이 김씨의 귀국과 동시에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문제는 검찰이 현대 비자금과 관련, 마지막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2,500만불에 대해 핵심 인사를 소환, 조사를 벌였음에도 2개월여가 넘은 현재까지 조사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2003년 정국을 강타했던 현대 비자금 사건의 마무리 차원에서라도 2,500만불의 최종 사용처 및 전달 경위 등을 공개해야 당연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김씨와의 사전 조율하에 2,500만불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오랜 기간 검찰 조사를 피해 도피생활을 해 왔던 김씨가 검찰 조사가 끝난 12월 10일,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는 것도 검찰과의 사전 교감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김씨가 현대상선 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2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회사의 공적 업무외의 용도로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 검찰이 김씨에게 업무상 횡령 등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김씨가 비록 정몽헌 회장의 지시하에 비자금을 조성했다 하더라도 현대상선의 책임자로서 법적 책임을 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사전조율설과는 달리 검찰이 김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김씨가 검찰 수사 방향에 반하는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2,500만불에 대한 수사를 벌이면서 이 돈이 최종적으로 권노갑씨에게 전달됐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사건 당사자인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씨를 상대로 권씨에게 총선자금용으로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미국으로 나가기 직전인 2003년 7월, 2차례의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2,500만불의 비자금 성격에 대해 정 회장 등과는 다른 진술을 했다. 김씨는 비자금 조성 배경에 대해 “정 회장이 사업권에 투자하는 것인데 회수가 될것”이라며 “대북사업권을 따면 통신분야는 현대상선에서 담당하면 될 거라 해서 대북사업용이지, 총선자금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미국에서 송금영수증까지 확인하고 돌아 온 김씨가 2,500만불은 대북사업용으로 쓰였다는 종전의 주장을 유지할 경우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씨의 진술대로 이 금액이 대북사업용으로 쓰였을 경우 정 회장과 이씨의 진술과는 달리, 2,500만불 수수의혹에 대한 권씨의 혐의는 벗겨지게 된다. 반면, 현대 비자금 사건과 같이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정몽헌 회장과 이씨의 진술에만 의존했던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곧, 현대비자금과 관련,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권씨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의 재판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찰로서는 현대 비자금의 핵심인물인 김씨에 대한 조사내용을 놓고 공개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권씨는 비자금 수수여부를 두고 검찰측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결국 대법원에서 정 회장과 이씨의 진술이 인정돼 5년형을 구형받은 상태다. 반면에 박 전 장관은 대법원에서 이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았다.그밖에도 검찰이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대 상선 외에 추가로 현대 비자금 조성에 개입된 현대그룹 계열사의 실체가 밝혀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경우 검찰로서는 좀 더 구체적인 조사와 물증 확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김씨에 대한 수사발표를 조절할 수 있다.

최근 대검 중수부가 김씨를 소환, 조사한 것을 시점으로 현대상선이 최대주주로 있던 현대전자 임직원들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잇달아 기소된 사건이 발생했다.(본지 562호 특종보도)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정몽헌 회장의 최 측근들을 상대로 검찰이 본격적인 현대 비자금 수사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검찰은 실제로 2003년 7월, 김씨를 상대로 현대상선 외에 현대전자 등에서도 2000년 4·13 총선과 관련, 비자금을 모은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한 바 있다. 현재로선 김씨가 검찰 조사과정에서 어디까지 진술을 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김씨가 현대 비자금의 핵심 인물인 만큼 그의 진술이 지니고 있는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검찰이 김씨의 조사내용과 출국배경에 대해 명백하게 공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전사장 검찰 수사중 2년새 4차례 출·입국

2003년 5월, 신변상의 이유로 해외에 체류중이던 김충식 전사장이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 입국했다. 당시 송두환 특별 검사팀에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진술하기 위해서다. 두달여 뒤인 2003년 6월 24일, 대북송금사건이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의혹으로 번지자, 대검 중수부는 김씨에 대해 출국금지를 신청했다. 조사를 받던 김씨는 현대 비자금 2,500만불에 대한 송금영수증을 미국의 지인을 통해 보관하고 있다며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한다. 검찰은 송금영수증을 가지고 입국한다는 조건으로 김씨에 대한 출국금지를 해제, 2003년 7월 31일 김씨는 미국으로 출국한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검찰 조사를 피해 장기간 해외도피 생활을 하던 김씨는 2004년 11월 1일 비밀리에 귀국한다. 극비리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한달 뒤인 2004년 12월 10일 김씨는 여전히 현대 비자금의 의혹을 남겨 놓은 채 유유히 미국으로 재출국했다.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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