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호남 비하, 국정원 댓글 사건 ‘비분강개’

- 국정원 대선개입 촛불집회 준비중 돌연 자살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영산강은 흐르고 무등산은 말이 없다”
열린우리당 시민사회국장이자 민주당 직능위 부위원장이었던 홍만희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전국동지회(이하 한청협, 50·사진) 회장이 평소 좋아하던 말이다. 그는 지난 7월9일 갑작스럽게 자살을 해 민주당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홍 회장은 지난 7월 9일 자택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만을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다. 무엇보다 홍 회장이 자살하기직전까지 부인 전모씨와 지인들이 전혀 눈치채지못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초등학교 갓입학한 딸과 5살난 아들 그리고 부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기구한 사연을 따라가봤다.


“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왜곡하는 정신병자들이 판치는 나라!/살인마가 국민의 세비로 경호받는 나라!/오월 영령들의 피눈물이 비가되어 내린다~/살아있는 우리에게/역사를 바로잡으라고/다시한번 일어서서/정의를 바로 세우라고”(고 홍만희 회장 페이스북중)

홍 회장이 자살을 하기 두달도 되기전 5월19일 페이스북에 자신의 심경 일단을 시로 적은 내용이다. 이젠 유서가 된 셈이다. 이글을 올릴 당시 일부 보수세력과 언론사들의 5.18민주화 운동 왜곡이 심하게 이루졌던 때였다. 시작은 5월 13일 TV 조선에 출연한 탈북인사인 임천용 자유북한인연합 대표가 “(5·18 운동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고, 전남도청을 점령한 건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TV 조선은 이를 여과 없이 내보낸 바 있다.

채널 A 역시 이틀후인 15일, ‘광주에 남파됐던 북한 특수군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탈북자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여기에 극우 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게시판에는, 5·18 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5월 희생자들을 ‘홍어’(호남인을 비하)로 표현한 글들이 난무했다.

“영산강은 흐르고  무등산은 말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5월 27일에 홍 회장은 “일베와 아베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자살을 염두에 둔 듯한 글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더 이상 그의 글은 볼 수가 없었다. 6월3일 홍 회장은 고 이범영 민청련 의장의 20주기 추모식을 준비하기위해 춘천에서 한청협 회원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술 한잔을 마셨다.

6월26일에는 이범영 전 민청련 의장 19주기 추모식 및 묘소 참배를 했고 이게 그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이 전 민청련 의장은 1983년 김근태, 장영달 의원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을 주도했다. 민청련 정책실을 책임지며 1987년 6월항쟁을 이끌었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자살 이유 등 안 밝혀
1992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초대 의장을 지냈고 1998년 민청련 의장이 됐다. 그는 민청련, 한청협으로 이어지는 80년대 청년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였다. 민주화 이후에는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또다시 구속됐다. 독재정권과 분단 체제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던 이범영 의장은 94년 암투병 끝에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청년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결국 홍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청협은 민청련의 후신인 셈이다. 한청협은 1987년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결성한 청년대중운동조직으로 1992년 2월 창립됐다. 전국 90여개 단체가 가입 또는 참관해 만들어진 연합체로 청년 문화활동, 지역대중운동, 반외세 및 민주통일운동에 참여해 왔다.

한편 홍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관련 친구들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20년이상 알고 지낸 친구 이모씨는 지난 11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정확한 동기는 모른다”면서 “자살을 한 9일 부인 다음으로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게 저다”면서 “부인에게도 ‘밥 먹었냐’ 정도의 통화를 했고 나도 40분간 통화를 했지만 자살을 할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성격도 내향적이기보다는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라면서 “유서를 남겼다고 하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정도외에는 왜 자살을 했는 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친구이자 한청협 회원인 이모 전 민주당 부대변인 역시 같은 날 본지와 통화에서 “자살 5일전에 소주 한잔을 같이 했다”며 “그러나 전혀 자살을 할 사람이 아니였다.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씨는 “평소 대선패배에 따른 낙담과 일부 보수우익 세력들의 5·18 민주화 운동 폄훼 및 호남 비하 발언에 대해 울분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렇다고 그것이 정확하게 자살 동기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전했다.

특히 이 인사는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비분강개했다고 강조했다. “만희는 평소 모여서 얘기할 때 국정원 댓글 사건과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NLL발언 공개에 대해 부당성을 토로했다”며 “그래서 한청협 차원의 시국 성명서 발표와 촛불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죽은 자 남긴 마지막 ‘시국 성명서’ 보니
이 전 부대변인 역시 “한청협 회장으로서 국정원 댓글 사건의 본질을 깨닫고 분노했으며 NLL발언까지 공개되자 성명서를 준비하고 촛불시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오랜 당직자 후배인 장모씨는 평소 성품이 그를 자살로 이끌었다고 내다봤다. 그는 본지와 통화에서 “만희 선배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며 “하지만 불의를 보면 180도 달라지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씨는 “듣기로 5, 6월 두달동안 호남인과 역사를 비하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고민을 많이했다고 들었다”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조차 부정되는 느낌을 받았고 9일 성명서를 자택에서 작성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홍 회장은 자살을 한 9일부터 12일까지 시국성명서 문구를 조율하고 한청협 차원의 서명 명단을 취합하고 있었다. 특히 성명서 발표와 동시에 13~14일 주말에는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행사까지 계획하고 있어 전혀 자살 할 것이라는 낌새는 챌 수 없었다는 것이 지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장씨 역시 10일 소주한잔 하기로 약속까지 했다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홍 회장은 성명서 문구 관련 강경파로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퇴진 운동’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성명서를 낭독할 홍 회장은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다. 한청협은 지난 11일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가 남긴 생애의 마지막 호소로 총 6가지 요구 사항을 담았다. ▲부정선거 책임자 이명박을 구속 처벌 ▲부정선거 집행책임 원세훈, 김용판을 즉각 구속 ▲국정원, 경찰의 부정선거 책임자 구속 처벌 ▲정상회담 불법공개 부정선거 기획책임 김무성 구속 ▲부정선거 기획주범 권영세 파면 ▲부정선거 공동책임 박근혜 책임져라!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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