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재계 활동 강화 나선 남재준 추진 개혁

[일요서울 ㅣ 오병호 프리랜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국정원 주변공기가 심상치 않다. 야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통해 국정원의 역할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반대 의견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의 몫”이라는 말로 속내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개혁의 성격인지 아니면 조직력 강화에 역점을 둔 개편인지는 모호하다. 국정원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국정원은 역할강화를 위해 조직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에는 국정원의 기업활동이 강화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의 경제개혁과 경제안보강화 정책을 수행하는 핵심 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에서는 국정원 요원들의 재계 출입을 비난함과 동시에 국정원의 경제계 관련 동향 첩보 수집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 활동 영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이 기업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경영에 개입하는 경우가 있다. 기관의 기업정보 수집은 기업을 정치적인 목적에서 활용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기업정보는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나 경찰이 수집해야 하고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위해 정보수집에 충실해야 한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산업스파이 등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막고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정원의 기업정보수집 활동은 필요하지만 기업정보를 수집해 해당 기업과 빅딜을 하거나 정치적 목적에서 검찰에 정보를 넘기는 행위 등이 만연하다는 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수사권한이 없지만 사실상 수사권이 있는 기관으로 인식돼 있고 특정 사안에 대해 별도의 조사를 벌이는 등 사정기관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는 면도 없지 않다. 때문에 관련법에 명시된 바에 따라 국정원의 수사권 행사는 엄격히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의 경제분야 정보활동에 대해 불만이 큰 것은 경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기업활동에 대한 동향 파악이나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은 경찰이 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산을 이용해 정보를 빼내는 것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을 통해 충분히 단속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기타 기업의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것 역시 국정원 보다 경찰이 전담해야 맞다는 것이다.

경찰-국정원 미묘한 신경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정원 기업출입 정보요원들이 기업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부정축재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국정원 기업 출입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기업에 출입하는 국정원 직원들 중 일부가 기업에 불리한 정보를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오히려 경제파트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말이 들린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개혁을 추진 중인 국정원이 경제파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개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전체적으로 개편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야권에서는 “국정원이 NLL 대화록 논란 이후 자체 개혁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역주행 속도만 높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현재 국정원은 국내 분야 기능 조정과 축소 방안을 핵심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파트는 국내 정보수집 활동에 속해 있다.
국정원은 경제파트를 축소하지 않고 대신 기능 조정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정책에서 중요시하는 ‘경제안보’를 충실히 수행하는 조직으로 같이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은 자원외교와 더불어 녹색에너지 정책에 기반을 둔 기업의 해외 사업에 여러 역할을 했다. 현지 조사와 더불어 각종 정책수행을 위해 기업을 해외사업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의 관계자들은 “국정원은 정부의 주요 사업에 기업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거나 정부의 뜻을 특정 기업에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했을 뿐 기업에 도움을 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체 국정원의 경제활동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기업정보 악용 부정축재도

한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국정원이 관련 정보수집 확대를 통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은 요원이 해외에서 추방당하는 등 허술한 모습만 보이지 않았냐. 역할을 강화하려면 지금까지 뭔가 필요성이 인식돼 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 현재 국정원의 경제활동 강화는 명분이 분명치 않다”고 불안 섞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 같은 불만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국정원의 직원이 삼성비자금 첩보를 가지고 있다며 삼성그룹을 협박하다가 파면당한 사건이 뒤늦게 드러난 적 있다.
이 사건은 국정원 기업정보 수집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20년 가까운 경력의 국정원 6급 직원 이모씨는 지난해 3월 초등학교 후배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담은 첩보였다.
이씨는 평소 광고 수주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다른 후배를 위해 이 첩보를 활용하기로 하고 삼성의 한 임원과 접촉했다. 이씨는 자신을 ‘국정원 조사과장’으로 소개하고 “6개월 동안 삼성 비자금을 조사해 증거를 확보했다. 내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다”라며 첩보가 담긴 문건을 보여주고 “사장에게 보고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이씨는 “아는 후배가 사정이 어려워 도와주고 싶다”며 첩보 제공의 대가를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내부에 보고하거나 검찰·경찰에 이첩하지 않고 첩보를 넘기는 조건으로 후배를 삼성과 연결해줄 작정이었다. 그는 ‘첩보를 자체 처리하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임원은 끝내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대신 국정원의 감찰이 들어왔다.
국정원은 이씨가 삼성을 협박, 대가를 요구하며 첩보를 사적으로 활용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고 지난해 6월 이씨를 파면했다. 삼성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신분을 노출한 일도 징계사유에 포함됐다.
이 사건이 드러나자 정치권 등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뿐 아니라 기업의 경제활동 개입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 동향을 수집하는 국정원 정보요원들이 업무 외 개인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가 재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 같은 사건이 겹치면서 국정원 개혁요구는 정치권 대학가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에 대해 “자체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야권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일단 국정원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개혁보다는 개편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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