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영등포 당사를 폐쇄하고 당직자를 줄여 중앙당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길바닥 천막당사를 만들었다. 민주당이 이런 절박함을 가진 데는 야권 울타리를 넘보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독자세력화가 강한 작용을 했다. 과도한 정치공세로 선명야당의 입지를 다지지 못하면 당이 깨질 수 있다는 위기전략이 길거리 당사, 거리 투쟁으로 작동한 것이다.
한편으론 줄어드는 중앙당 인원을 각 지역에 배치해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하겠다는 구상이 나타난다. 김한길 대표의 이번 혁신안을 보면 과거 ‘박근혜 천막당사’를 추억케 하는 요소가 있다. 상황은 달라도 내용면에서 그러하고, 또 그것이 교본이 돼 10년만의 뒤바뀐 천막당사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같은 그림을 대하는 시선이 판이해졌다.
2004년 한나라당 천막당사 경우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 연패하고 차떼기 불법자금 거래가 드러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박근혜 당시 대표가 국민께 속죄하며 천막당사로 이전해 이미지 개선에 성공했었다. 이때의 성공이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등을 떠밀었다는 지적이 많다. 김한길 대표가 당 대표에 당선됐을 때 ‘천막당사’를 넘어서는 파격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김 신임대표가 내놓은 혁신안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였다. 민주당의 지역 당직자가 트위터에 남긴 글에는 “김한길 대표, 민주당 그 어디에도 혁신은 없다, 지방분권 시대 권력은 여전히 ‘중앙’에 있는 모양새고 균형 있는 지역정치는 어디에도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새누리당 측은 민주당이 혁신을 외치기 전에 국민의 상식을 벗어나는 행태를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누리꾼들 반응은 “민주당 크기를 줄여 안철수와 합당하려는 수작”이라고 까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나갈 때는 쉽지만 들어오기는 쉽지 않은 것이 ‘장외투쟁’으로 일컫는 정치판의 ‘길거리 정치’다. 의기양양해서 나간 사람들이 작은 성과라도 명분을 얻지 못하면 복귀하기가 궁색해진다.
과거 정통성이 취약했던 여당이 거리로 나간 야당을 불러들일 명분을 만들어 줬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이 더욱 곤혹스러운 판이다.
군사문화 때의 직선제 개헌 같은 주요한 성과가 장외투쟁의 결과물임에 분명하지만 중요한 점은 대중을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할 때는 반드시 대중이 갈망하는 바와 부합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짜 길거리 정치는 국민들과 자주 만나고 직접 민의를 듣는 것일 게다. 서울시청 앞을 지나는 많은 시민들은 이 더운 날씨에 높으신 국회의원들이 고생을 사서하고 있으니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법도 하건만 별로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눈살 찌푸리고 시답잖아 하는 기색이 지배적 상황이다.
김한길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제 와서 판을 걷을 수도 없고 계속하자니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진퇴유곡을 느껴서 일 것이다. 박 대통령더러 헤어날 길을 열어달라고 할 것이면 양자(兩者)니, 5자니 기싸움 할 것 없이 차라리 청와대에 절차 없는 대통령 면담 신청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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