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비리 천문학적 뒷돈…측근 연루 정황 포착

[일요서울ㅣ오병호 프리랜서] 국회는 지난 2월 26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총 71개의 안건을 처리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한식 세계화’ 감사 의결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식 명칭은 ‘한식 세계화 지원 사업 관련 감사요구안’이고, 새누리당 친박계 김재원 의원이 주도했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 처리됐으며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농림수산식품위원장 제안에 원안 가결됐다. 같은 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고 임기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었던 4대강 사업과 관련된 감사안인 ‘4대강 수질개선을 위한 총인처리시설 입찰 관련 감사요구안’도 함께 통과됐다.이 두 사업은 바로 전 정권의 수장 내외가 임기 동안 강력하게 또 직접적으로 추진했던 것으로 친박계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두 사업의 공통점은 지난 5년 동안 투입되는 예산도 많았고 또 각종 노력과 비용이 국가 정책 수준 이상으로 투입되었으나 정책의 방향과 실효성에 대해 각종 의문이 제기 되는 등 많은 논란을 낳았다는 것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4대강 사업과 더불어 MB정부 비리의 큰 축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한식의 세계화’다”라는 말이 무성하다. 한식의 세계화에는 MB정부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더불어 김윤옥 여사의 측근들도 일부 개입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제공>

일단 감사원은 ‘한식의 세계화’ 사업이 큰 문제없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정기관이 보는 시각은 다르다. 이 사업에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이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온갖 비리가 자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업에 가장 큰 특혜를 입은 것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유명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K씨다.
K씨는 MB정부 당시 청와대 핵심의 도움을 받아 한식 세계화 사업을 추진해 상당한 이익을 취했을 뿐 아니라 현 정부 핵심인사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사업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첩보가 사정기관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전 정권의 핵심 정책들에 대한 감사가 즉각적으로 시작되는 형국이어서 이를 놓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명박 정부와 선긋기를 한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식세계화는 2008년 10월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열린 ‘코리안 푸드 엑스포 2008’에서 있었던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통해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한식을 세계인이 즐기는 세계 5대 음식의 반열에 올리고자 시작된 한식 세계화 정책은 당시 국무총리직을 맡고 있었던 한승수 국무총리까지 참여하는 등 범정부적 차원의 규모로 추진된 계획이다.
4800조원에 이르는 세계 식품산업 관련 시장을 한식세계화로 공략해 이를 차세대 국가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이러한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가수 비를 홍보대사로 삼고 기업은행도 식품 관련 중소기업들을 대폭 지원해 한식 세계화에 한 몫 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의 구상은 단순히 구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를 구체화하고 추진했다.
2009년을 시작으로 한식 세계화 사업은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본격화 됐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엔 전 영부인이었던 김윤옥여사가 있었다.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의 명예 회장으로 임명된 김윤옥 여사가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하는 모습이 연일 신문 위에 오르내렸다.
영부인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던 한식 세계화는 뉴욕으로의 진출 계획을 세우는 등 수백억대의 예산을 배정받으면서 명실공히 정부의 야심 프로젝트로 분류됐다.

야심찬 청와대 프로젝트

하지만 그 기세는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후 이 프로젝트에 대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예산이 가장 크게 논란이 됐다. 2010년에 해외 한국 식당건립 예산 50억원을 배정했지만 이듬해 7월까지 이 예산이 집행된 이후 실적이 없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는 2009년 시작한 한식 세계화 사업에 지금까지 769억여원 상당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이에 대한 성과는 굉장히 미비했다고 보고됐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기획으로 농림수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지식경제부의 장관등 각료들이 위원을 맡고 청와대 대통령실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범정부적 차원의 규모를 자랑했던 이 사업은 4년이나 진행되는 와중에도 명확한 마스터플랜이나 장기 로드맵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 무계획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중복 집행되거나 진행되다 중단되는 사업이 다수 발생하는 등 부실, 졸속 사업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됐다.
정부는 2010년 말, 50억원을 지원해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뉴욕 한복판에 한식당을 개설해 뉴욕의 중심에 우뚝 서겠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뉴욕 맨하탄 플래그쉽 한식당 개설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뉴욕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취지로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제대로 된 사업타당성 조사, 관계 전문가 의견 수렴도 없이 급속하게 졸속 추진됐고 국내 사업 설명회에는 2개 업체, 뉴욕 사업설명회에는 6개 업체만 형식적으로 참석했다.
게다가 사업 공모에는 아무도 공모 신청을 하지 않아 50억원의 정부 예산으로 추진됐던 이 사업은 후속 대책 없이 백지화 되어 버렸다. 이 계획은 현지에서 협조를 구해야 했던 뉴욕 현지의 사업자들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의 전용 문제였다. 사업의 중단으로 인해 당연히 불용됐어야 할 예산 50억이 이듬해 한식 세계화 사업의 예산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예산확보를 위해 불필요한 연구용역, 한식 사이트 개편 등에 전용해 사용한 것이다.
뉴욕 플래그쉽 식당 사업의 실패로 인해 기존 연구 용역 집행금액이 적정선인 1, 2차 18억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로 12월 29일에 40억원을 투입한 것은 명분이 없음에도 해가 넘어가기 전에 예산을 다 써버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청와대 핵심이 예산 빼돌려

이에 최근 예산 용처에 대한 의혹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조사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한식재단의 비리 의혹과 관련한 제보가 접수돼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정황이 확보되면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부인이 추진한 사업에 정부 예산으로 집행된 한식 세계화 사업에 영부인 주변 인사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직 대통령 측근 비리가 터져 나올 가능성도 다분하다.
MB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서실에 근무하던 L씨가 한식세계화 비리의 핵심이다. L씨는 MB의 대선캠프에서 활약을 했으나 해외방문 일정 중에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 MB의 핵심에서 제외되기도 했으나 한식세계화 사업을 통해 이 사업 예상의 대부분을 빼돌린 인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인사는 예산 집행과 더불어 외주 사업체 섭외 등에 관여하면서 예산을 전용케 하고 외주 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는 등 적지 않는 비리를 저지를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서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뉴욕 플래그쉽 한식당 사업은 국회 예산 처리 당시 이 예산을 위해 결식 아동 방학급식비 등이 전액 삭감되면서까지 추진됐을 정도로 시급한 사안이었다”며 “하지만 이런 중대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철저한 조사와 의견 수용도 없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서실 관계자에 따르면 한식세계화사업의 실무집행에 주축이 되는 기관은 바로 한식재단이다. 이 재단은 2010년에 설립되어 매년 100억원씩 예산을 받아 한식세계화의 인프라 구축, 한식 경쟁력 강화, 한식 마케팅 지원 관련 실무집행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 한식재단의 조직을 들여다보면 이 기관이 과연 100억 여원에 이르는 예산을 받으며 업무를 집행하는 데 적합한 기관인지 의문이 든다.
한식 사업의 핵심적 역할을 해나가야 할 한식재단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한식재단의 조직력이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재단은 부지를 지자체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고, 건축 공사비는 국고 지원으로 283억원 가량을 받았다. 이 부분에서 제기되는 여러 의문점에 대해서도 L씨가 키를 쥐고 있다.

비리의혹 키맨은 L씨

또 L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녀와 함께 미국에 와이너리를 인수하고 MB정부가 해당 와이너리에 지원금을 주도록 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L씨는 한식세계화와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벌이고 그 이벤트에 와인과 각종 식자재 등을 납품하면서 상당한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L씨는 예산을 자신이 정한 업체에 배정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뒀다.
예컨대 농수산물유통공사는 한식당 개선자금 지원 대상에 전통한식으로 보기 어려운 ‘양념치킨’업체를 포함시켰다가 한식의 정의와 관련한 비판들을 받았던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식 세계화를 위한 전문 요리사를 육성하겠다며 시행한 재교육 프로그램인 ‘스타셰프’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말 많고 탈 많은 한식세계화 사업에 대해서 국회는 결국 전면적 감사라는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핵심인물은 L씨의 실체에 대해 첩보 수준의 정보조차 입수하지 못한 것을 보면 감사원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감사원은 감사 이유에 대해 “2011년도 농림수산식품부 결산 심사와 2012년 국정감사 결과 한식세계화 지원 사업의 집행기관이 다원화되어 있고 예산집행이 저조하는 등 투입된 예산 대비 사업 효과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감사원은 “또한 식품산업진흥법 제17조의2에 따라 한식세계화사업추진기관으로 지정된 한식재단이 2011년 ‘뉴욕 플래그쉽 한식당’ 개설을 위한 국고 보조금 50억원을 집행함에 있어 식당 개설이 불가능하게 되자 동 지원금을 연도 말에 우수성·기능성 연구사업, 한식재단 홈페이지 구축, 외국어 표기 길라잡이 등으로 자체 변경 집행하여 예산을 목적 외로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내역 변경이 사업연도 말에 이루어짐에 따라 예산이 연도 내 집행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한식세계화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를 통해 그 과정상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유사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국회법 제127조의2에 따라 주문의 내용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실시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 실효성 없는 사업들을 보며 많은 국민은 의아해했고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저소득층 자녀들의 급식 예산을 삭감하면서까지 강행했기 때문에 이 사업의 부실은 더욱 쉽게 보아 넘기기 힘들다.
그러나 당시 한식세계화에 찬성한 인물들이 새누리당에 적지 않고 일부는 친박계 인사이기도 해서 이 사업의 문제가 어디까지 밝혀질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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