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개혁안을 보면 대공수사권을 비롯해 모든 수사권을 폐지할 뿐 아니라 국내정보 파트를 분리하고 국회의 국정원 통제가 강화되는 안이다. 거의 ‘국정원 해체’ 수준이다. 수사권을 검, 경으로 이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민주당 사람들 인식이다. 검사에게 간첩을 잡으라는 것이다.
‘왕제산 사건’에 이어 ‘이석기 사태’에서 보듯 종북세력은 이제 국회까지 진출해 군사기밀 자료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마당에 국정원의 핵심기능인 대공수사권이 폐지 위기를 맞고 있다. 종북세력을 일소해야 한다는 여론 공감대가 야권 정치 세력에 의해 무시 당하는 꼴이다. 지금 그 같은 국정원 해체 주장이 언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감조차 안 잡힌다.
정보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로 자타가 공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국정원 기능에 대해 집권 전 논리와 진권 후의 대응이 달랐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국정원은 누가 뭐래도 오랫동안 쌓아온 대공수사에 관한 축적된 노하우와 자료가 있다. 이걸 온통 엎어버리자는데 동의할 건전세력이 있을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국정원은 사라지고 유신시대 중앙정보부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중앙정보부 시절에 과연 야당이 정보부 기능과 역할에 관해서 폐지를 주장하고, 내란혐의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압수수색에 육체적 저항을 하며 지금같이 당 홈페이지에 국정원을 난도질할 수 있었는지를 김 대표에게 묻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르긴 해도 줄을 설 것 같다.
민주당 내에서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은 국가를 무장 해제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물론 국정원이 수십 년간 행해온 국내정치 개입 문제만큼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고리를 끊어내도록 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없다. 다만 종북주의자들을 척결하는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정에 국가가 놓인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뒤집으려는 세력은 북한군이 아닌 우리 내부에 기생하고 있는 종북주의자들과 일부 급진 좌파세력이다. 종북세력은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북한군의 포격으로 연평도가 불바다가 돼도 남한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을 펴면서 북한 옹호에 열 올리고 나서는 터다. 이걸 뻔히 알면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야당이 오늘날 누구를 위한 야당이란 건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정상적이면 종북세력이 판칠 수 있도록 방치해서 직무를 유기한데 대한 국정원의 엄중한 책임을 먼저 따지고 나서는 제1야당의 체모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 말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독일이 패망한건 연합군의 신예첨단무기에 대한 정보가 깜깜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본과 독일이 미국의 CIA, 소련의 KGB에 맞설 만한 첩보 능력을 갖추었으면 2차대전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수 있다.
독일은 ‘게슈타포’로 불린 비밀경찰이 나치스 정권의 체제강화에 혈안이 됐을 뿐이고 일본은 ‘난베 다이사쿠’라는 일개 헌병 중위가 이끈 정보대가 소위 불온분자 색출에 매달려 있다가 첩보전에 맥 못 추고 백기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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