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복지부장관의 사표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그의 사표 제출과 관련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정치적 패륜’ ‘대통령에 대한 배신’ 등 막말을 쏟아냈다. 그에 반해 제1야당인 민주당은 ‘양심을 가진 장관’이라며 곱게 봐주었다.

진 전 장관의 사표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청와대가 거부한 데 기인했다. 그는 그동안 주무장관으로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계속 반대”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가 자신의 건의를 묵살하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시킴으로써 장관직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의 사퇴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관 이전에 나 자신의 양심 문제”라며 굽히지 않았다.

우리 헌법 87조는 국무위원은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을 심의’한다고 되어 있으며 89조에서는 ‘행정 각부의 중요한 정책의 수립과 조정’을 맡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관은 국정을 심의하고 수립하며 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고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퇴할 수 있다. 진 전 장관은 본인의 확고한 소신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자 ‘양심’에 반하는 정책을 집행하느니보다는 사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측이 진 전 장관의 사퇴를 ‘배신’ ‘패륜’으로 몰아갔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전근대적 정치문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영한다. 장관을 대통령의 머슴 정도로 여긴다는 권위주의 의식 때문이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했으므로 무조건 여당이나 대통령의 정책을 목숨 바쳐 옹호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추종의식에 연유한다. 대통령과 장관 관계는 오직 복종과 충성뿐이며 반론 제기는 불충(不忠)으로 간주하는 후진적 정치문화의식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행태는 소통보다는 ‘불러주기식 일방통행’이라는 말이 나 돈다. 실상 박 대통령은 “내가 얘기할 때 참모들이 안 적고 있으면 불안할 때가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에서는 “적어야 산다”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진 전 장관의 사퇴 동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얽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장관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던짐으로써 한국 정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대통령 밑에서 장관 자리를 누리기 위해 ‘적어야 산다’는 피동적 각료보다는 생각이 다르면 떠난다는 소신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소신 있는 장관 상(像)’ 수립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우리나라 정치사에는 1950년대 초 이시영 부통령과 그의 뒤를 이은 김성수 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항거해 사퇴한 기록이 있다.

구미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장관이 대통령과 이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장관직을 떠나는 경우가 있었다. 연봉이 적어 장관직을 사퇴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국무부의 캐런 휴즈 차관은 2007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같은 해 프랑스의 여류 탐험가 모 퐁트누아는 정무장관직을 제안받았으나 “자서전 출간과 다큐멘터리 제작 그리고 방송 출연 등으로 일정이 꽉 차 있다”며 장관직 제의를 거절하였다.

장관이란 큰 감투이긴 하지만 정치적 소신과 양심까지 팽개치며 매달릴 필요는 없다. 가족과 시간을 더 갖기 위해 떠나야 할 때는 가볍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밑에서 받아 적으며 모든 게 ‘지당합니다’를 연발하는 ‘지당 장관’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만을 위한 머슴에 지나지 않는다. 진영 전 장관의 소신에 찬 사퇴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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