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비용이 없어서… 어머니 미안”

▲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버리기까지 하는 패륜범죄가 늘고 있다. 최근 대전에서는 자식들이 죽은 어머니의 시신을 버리고 부의금만 챙겨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얼마 전에는 포털사이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할아버지의 사진을 올리는 일도 발생했다. 최근 4년간 패륜 범죄로 경찰에 붙잡힌 사람만 10만 명이 넘는다. 실제 발생한 패륜범죄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효’를 중시하던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다.

母 시신 5개월째 장례식장 냉동고 보관 매정한 3남매
스스로 목숨 끊은 가족 인증사진 올리기도… 패륜 심각

지난 5월 5일 지병으로 사망한 유모(68·여)씨. 그녀는 번듯한 두 아들과 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개월째 대전 을지대학병원 장례식장 냉동고에 방치돼 있었다. 3남매가 유씨를 버리고 도망간 것.
장례 마지막 날 3남매는 유씨를 놓아둔 채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만 가지고 사라졌다. 장례식장 측에서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3남매 측에서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천여만 원 때문에 母 버려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키던 3남매가 발인 당일 부의금만 가지고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유씨의 입원비 1000여만 원과 장례비용 300만 원 등을 정산하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 알고 보니 이복형제였던 3남매는 이날 딸이 부의금을 가지고 사라지자 장례비를 지불할 여건이 되지 않은 아들들도 도망간 것으로 알려졌다.

3남매가 병원 측에 정산해야 할 금액은 5개월간 냉동고에 보관된 안치료 700여만 원을 합쳐서 모두 2000여만 원이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3남매는 병원에서 오는 연락을 모조리 피하고 있다.
이에 병원 측은 이들을 업무방해 및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 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여러 차례 출석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3남매는 여러 이유를 대며 미루고 있다”며 “계속해서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면 기소중지(지명수배)를 통해 신병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방치돼 있는 유씨의 시신은 3남매가 끝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사체포기각서를 받고 화장된 뒤 무연고 처리된다.

증가하는 패륜범죄

이처럼 돈 때문에 부모를 버리고 죽이기까지 하는 패륜범죄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도박 중독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하던 정모(29)씨가 어머니 김모(59)씨의 돈을 노리고 김씨와 형 정모(32)씨를 죽이고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 정씨는 한 달 동안 어머니와 형을 죽이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아버지 이모(55)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아들 이모(22)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군 전역 후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유흥비로 2500여만 원의 빚을 지고 있던 이씨는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자 친구와 함께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 사례와 같은 존속살인은 2008년 45건에서 2011년 68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08년부터 패륜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에 검거된 사람은 무려 10만 명이 넘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은 게시물이 올라와 ‘패륜’논란이 일었다. 사진에는 욕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노인과 함께 자신의 닉네임을 적은 종이가 찍혀 있었다. 또한 “화장실을 가 봤는데 할아버지가 자살하셨다. 당황했는데 종이 찾아서 인증부터 하려고 생각했다. 명복 빌어줘라”라는 글도 게재됐다. 논란이 이어지자 게시물은 삭제됐다.
   
부모 안티카페까지 등장

지난 3월에는 부모 안티카페가 언론을 통해 보도돼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대형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마더파더 안티카페or팬카페’는 2009년 개설돼 6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시판에는 ‘아침에 걸카웃 학교에서 입어도 되는데 지금 당장 안 입으면 폰 정지시켜버리겠대 XX. 작작해라 할망구야 XX’, ‘존나 애미XX가 핸드폰 정지시킨다고 가져감. 엄마 미친 XX이… 어디 가서 뒤져라 보험금 받게’, ‘엄마면 뭐하냐 XXX인데 니같은 여자XX는 그냥 입 닥치고 밥이나 차리고 돈이나 벌어오면 된다 XX’ 등과 같이 입에도 담기 힘든 욕들이 올라와 있었다.

청소년 사이에 패드립(패륜과 애드리브의 합성어)이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유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패륜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현재 해당 카페는 접근이 금지돼 있다.

전문가들은 패륜범죄의 원인으로 ‘가족 갈등’을 꼽는다. 소통이 되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면서 쌓인 갈등이 결국에는 패륜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문용각 대표는 “상대로 인해서 내가 피해를 보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우리는 ‘갈등’ 또는 ‘긴장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갈등은 ‘너만 없어지면’, ‘너는 나를 힘들게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해’라는 생각으로 상대를 제거하는 데서 끝난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부모에게 패륜적인 행동을 저지른다면 거기에는 가족갈등이라는 긴 프로세스가 담겨 있는 것이다. 갈등을 놓아두고 방치하면 결국 범죄로까지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또 “우리나라는 학교와 가정 어디에서도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갈등이라는 것은 결국 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감추고 공격적인 언어적 폭력을 가하다 보니 갈등이 생긴다”라며 “독일의 경우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대화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같이 자기를 표현하는 연습과 훈련이 없다면 가정에서는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고 이것이 결국 범죄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너는 공부도 안하고 뭐하냐! 안 되겠다. 넌 그냥 평생 그렇게 살아라’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대들면서 갈등이 발생한다”며 “그러나 대화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아버지는 ‘네가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갔을 때 힘들까봐 나는 무척 걱정이 되는 구나’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들은 ‘아버지가 걱정을 많이 하셨구나.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반응하게 된다. 그러면 갈등이 사라지고 패륜범죄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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