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찾고, 여자는 지우고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이 집집마다 보급되면서 가정주부들의 상담이 크게 늘었다. 주부들의 상담에는 채팅 사이트와 관련된 내용의 문의가 많다. 모 업체 상담원 K씨는 “‘내가 들어갔던 사이트를 지우는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질문이 종종 걸려온다”며 “그런 문의 대부분은 채팅사이트와 관련이 있다”고 소개했다. 남편이 출근한 뒤 호기심에 채팅사이트에 접속해 남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혹 남편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흔적을 지우려 상담원에게 문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일부 문의는 “들어갔던 사이트를 지웠는데 사이트 주소가 생각이 안나 접속을 못하고 있다”며 “다시 그 사이트에 접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전화도 종종 온다”는 것. 주로 낮에 걸려온 이런 문의는 여성들로부터 많이 오며 가정주부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모 업체 상담원 L씨는 “종종 고객과 장애 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일부 가정주부들의 경우 남자 직원만을 바꿔 달라는 분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남자 상담원에게 이것저것 묻다가 자신의 집주소까지 친절히 가르쳐 주며 한 번 놀러오라는 주부까지 있다는 것. 반면 밤에는 남성들이 황당한 전화를 많이 건다. 가장 많은 전화 중의 하나가 바로 성인 사이트와 관련된 문의다.

상담원 L씨에 따르면, 30대 A씨가 전화를 걸어 “특정 사이트 접속이 안된다”며 “너희들이 그 사이트 접속을 폐쇄한 게 아니냐”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상담원이 “사이트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하자 A씨는 “xxx000.com”이라는 성인사이트주소를 댔다. 그러면서 그는 은근히 “내가 아는 사이트는 이곳밖에 없는데 좋은 사이트 있으면 좀 가르쳐 달라”고 사정했다. 술 취한 남성들의 장난전화도 많다. 전직 모 업체 상담원 H씨는 “술 취한 사람이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성냥에 불을 붙이는 소리를 전화기에 내면서 ‘지금 내 앞에서 불이 나고 있다’며 ‘119에 신고 좀 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밤마다 전화했던 학생, 알고 보니 귀신?
모업체 야간 당직반으로부터 전해진 괴담도 있다. 해당 업체 전상담원이었던 H씨에 따르면 늦은 밤에 한 학생이 전화해서 ‘인터넷이 안 된다’며 상담을 했다. 문제가 전화상으로 해결이 불가능해 직원은 “직접 방문해서 해결해 드리겠다”고 장애신고를 접수했다. 그런데 회사 기사가 다음날 상담했던 학생 집으로 찾아가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그 집에서 “장애를 신고한 사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신고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접수신고를 받은 업체는 확인전화를 했고 그 집에선 “전화를 한 사람이 없다는 데 왜 연락했냐”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그 학생의 전화를 받은 상담원이 다음날 아침 그 집에 전화를 하자 “도대체 누가 그런 전화를 하느냐”고 물었고, 상담원은 “어린 학생 목소리였다. 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슨 소리하느냐. 아들이 죽은지가 1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단지 그 집은 아들이 신청해 사용하던 인터넷을 해지하지 않은 상태였다.

H씨는 “이 일화는 우연인지, 전화번호가 잘 못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동안 괴담으로 나돌았던 얘기”라고 전했다. 친절함을 강조하다보니, 이를 오해해 여자 상담원을 괴롭히는 스토커들도 있다. 상담원 B씨는 “지난해 <가을동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을 당시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만 되면 전화를 걸어오는 20대 후반의 남성이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자신을 ‘돈 많은 재벌 집 아들’이라고 소개한 그는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보셨어요. 은서가 너무 많이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아파요”라며 “은서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가을 동화 주제가, 팝송을 불렀다는 것.한참동안 가을 동화 이야기를 한 후 그는 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모 상담원을 바꿔달라”고 애원한 뒤 “그 동안 어머니가 반대를 해서 결혼을 못했는데 이제는 허락을 받아 결혼만 하면 된다”고 모 상담원을 괴롭혔다. 심할 경우 하루에 10통 이상 전화를 걸기도 해 그는 상담원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 “그 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인터넷을 끊어 일단락됐다.

조폭, ‘나 이젠 형님한테 죽었다·너희들 어떡할래!”
조폭들이 전화를 걸어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는 일도 종종 있다. 주로 게임을 하던 도중 장애가 발생할 경우다.모 업체 상담원 L씨는 “한번은 전화를 걸자마자 심하게 욕설을 퍼붓던 고객이 있었다”며 “그는 ‘나 어제 감옥에서 출소해 마음잡고 살아가려고 인터넷을 설치했는데 왜 방해하느냐’며 ‘당장 인터넷을 고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L씨는 또 “상담을 해보니 게임을 하다 인터넷 접속이 끊긴 경우였는데 갑자기 그가 ‘빨리 고치지 않는다’며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 밑에 애들 다 풀어 보낼테니, 너 지금 꼼짝 말고 있어’라고 말해 무서웠었다”고 전했다. 게임 아이템을 잃어버려 찾아내라는 조폭들의 전화도 많다.

전직 상담원 H씨에 따르면 인터넷 L 게임을 하고 있던 조폭이 다급한 목소리로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SOS를 쳤다. 그는 “자기 형님이 열심히 게임해서 레벨 올리라고 잠시 빌려준 고급 아이템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며 “인터넷이 갑자기 끊겨 아이템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항의전화를 한 것. 이 조폭은 “너희들 어떻게 할거야. 그 아이템 못 찾으면 나 이제 형님한테 죽었다”며 “빨리 찾아낼 방법 가르쳐 줘. 안 그러면 너희들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라고 상담원에게 분풀이를 했다. 한편 상담원 L씨는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말할 상대가 없는 노인들은 친절하게 대하는 상담원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며 “그럴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일과는 별 관련이 없지만 따뜻하게 대해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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