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비 실명제가 뭐길래!’룸 업계가 울상 짓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좋은 상황에서 국세청이 50만원 이상 접대비 실명제를 계속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수입감소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안마시술소가 새롭게 접대의 명소로 뜨고 있다. 또 젊은이들의 장소 나이트 클럽에도 30대 직장인들의 출입이 부쩍 늘고 있다. 접대 실명제 이후 변화하고 있는 밤 문화의 풍경을 찾았다. 30대 직장인 김인석(가명·32)씨는 최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이른바 물 좋다는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대학졸업 이후 4년만에 다시 나이트클럽에 발을 내디딘 김씨. 사실 그는 직장에서 접대 업무가 많아 한 달에 서 너 번은 룸살롱을 출입했다. 접대도 접대지만 ‘나가요 걸’들과의 놀이에 익숙해져 동료들과 함께 가는 횟수도 늘었다. 그러나 최근 국세청이 접대비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동료들과 자주 가던 강남의 룸살롱을 가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이에 룸 대신 나이트클럽을 찾는 것. 김씨는 나이 때문에 다소 어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비슷한 또래의 직장인들의 모습이 많았던 것. ‘나가요 걸’들에 익숙했던 김씨는 오랜만에 시도해본 부킹의 재미도 좋았다.

아가씨 필요없어 우리끼리 놀다 갈래!
최근 김씨처럼 룸살롱을 출입했던 직장인들이 나이트클럽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명동의 고급 룸살롱 웨이터 김모씨는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다”며 “업소들마다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접대를 위해 자주 출입하던 단골들도 요즘은 통 보이지 않고 다른 접대 장소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인카드를 들고 동료들끼리 오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찾기란 더더욱 힘들다”고 말하며 울상이다.

그나마 룸살롱을 찾는 이들은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다. 외국계 법인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 이에 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들이 많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전한다. 술값 50만원 이하를 맞추기 위한 이색적인 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강남의 A 룸살롱 종업원은 “접대실명제로 인해 요즘은 나가요 걸들을 부르지 않는 이들도 많다”며 “그냥 3∼4명이 룸 하나 잡고 자기들끼리 노래 부르다 가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삼성동의 한 업소 종업원은 “일부 손님들은 처음 들어올 때 나가요 걸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부터 친다”며 “술도 양주는 기본 1병만 시킨 뒤 맥주만 요구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전했다.

룸살롱에서 흥청망청 마시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거리던 풍경은 과거지사가 된 지 오래라는 얘기다. 결국 몇몇 업소들은 이른바 패키지 가격과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치열한 생존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양주, 맥주 등의 술과 나가요 걸을 합쳐 50만원 이하의 파격적인 가격이벤트가 대표적인 예. 이 밖에도 영수증을 서로 나눠 끊어주기, 영수증 날짜 바꿔치기 등 갖가지 묘안을 찾고 있지만, 절차가 번거로운 데다 시간이 많이 걸려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세청은 “접대실명제는 기업의 체질 강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와 건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시행돼야 한다”고 말해, 당분간 접대 실명제가 유지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해 업계의 불안심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나이트클럽·안마시술소 뜨다
반면 안마시술소가 새롭게 접대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룸살롱, 골프 등의 접대는 50만원으로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안마시술소는 그 정도 금액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1인당 15만∼20만원 정도면 최고급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최근 강남 일대의 안마시술소들이 평일에도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 강남의 한 안마시술소 종업원은 “접대 실명제 이후 손님들이 많이 는 것은 사실이다”며 “접대를 위해 룸에서 간단하게 술 한잔 마신 뒤 찾아와 피로를 풀고 가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호황을 누리자 실내 분위기까지 바꾸며 접대 명소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업소들도 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 또 룸살롱에서 일하던 나가요 걸들의 이직을 위한 문의도 많다는 것. 나이트 클럽쪽도 호황 분위기다.

특히 중년층에게 인기 있는 몇몇 나이트 클럽은 접대장소로도 종종 이용되고 있을 정도다. 강북의 D 나이트 클럽 종업원은 “나이트 클럽은 접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요즘은 접대를 위해 예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룸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다 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룸살롱 접대 대안으로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등 20대가 주로 찾는 강남 일대의 나이트 클럽에도 30대층의 직장인 모습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게 업소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이같은 접대문화와 밤문화의 변화는 접대실명제가 계속되는 한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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