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3일 국가기관 직원들의 18대 대통령 선거개입 댓글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하고 나섰다. 그는 “박 대통령이 대선의 불공정과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군사독재 시절 이후 찾아보기 어려웠던 군의 선거 개입”이라며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고 못 박았다.
문 의원도 야당 소속으로서 국정원 댓글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할 수 있다. 그동안 민주당의 정세균 전 대표와 설훈 의원 등은 18대 대선을 “관건 부정선거”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하고 은폐한 것 때문에 국민의 분노를 산 것 아니냐”며 워터게이트 사건과 연계시켰다. 견강부회였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들고 일어난다 해도 문재인 의원만큼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켜봤어야 옳다. 그는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고 108만 표라는 확실한 차이로 낙선한 패장(敗將)이다. 그는 대선 후 “역부족이었다”고 시인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측이 ‘관건 부정선거’ 운운하자 거기에 휩싸였는지 갑자기 “대선 불공정” “박근혜 수혜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자신의 ‘역부족’이 아니라 ‘불공정’ ‘군의 선거 개입’ 등으로 전가하려 한다는 비굴한 인상을 금치 못하게 했다.
국가기관 직원들의 선거개입 댓글은 아직 조사 중이며 재판 중이다. 관련 책임자들은 직원들에게 선거개입을 지시한 바 없고 각 개인의 임의적 작위였다고 반박했다. 작년 대선 기간이었던 9월~12월 트윗·리트윗한 글의 생산량은 2억8000만 건인데 수사팀이 밝혀낸 수는 5만5689건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전체 트윗·리트윗 글들 중 0.02%에 불과해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미미했더라도 철저히 조사해 불법이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대선 불복은) 아니다”며 “대선을 다시 하자고 하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 의원은 대선이 ‘불공정’했고 그 ‘수혜자’는 박 대통령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불공정 선거로 억울하게 낙선된 것 같은 감을 금치 못하게 했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지지표를 던진 1500만이 넘는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 의원의 대선 불공정 문제 제기는 그가 작년 대선에서 보여주었던 깨끗한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는 작년 12월 31일자 [일요서울]의 ‘패장(敗將)이 남긴 아름다운 전적(戰跡)’ 칼럼에서 문 후보의 깔끔한 대선 행태를 높이 평가했다. 문 후보는 ‘부드럽고 맑은 모습을 시종일관 잃지 않았다’고 썼으며 ‘페어플레이(공명정대)와 중세기 기사도(騎士道) 같은 반듯한 정신’ ‘아름다운 승복’의 여유를 보여주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문 의원은 23일 토해낸 ‘대선 불공정’시비로 ‘반듯한 정신’ 대신 탁한 정신을 보였고 ‘아름다운 승복’ 대신 책임전가 행태를 드러냈다. 그는 18대 대선을 통해 쌓아올렸던 깔끔한 인상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고 말았다.
문 의원은 노무현-김정일 대화록과 관련해서도 “결국 대화록은 있고, NLL(북방한계선) 발언은 없었다”는 이해 못할 발언으로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내린바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는 ‘대선 불공정’ ‘박근혜 수혜자’ 발언으로 대선 후보 때 얻었던 ‘페어플레이’ 모습마저 잃었다. 문 의원은 인간으로서 ‘신뢰를 쌓아 올리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순간적이다’라는 금언을 되새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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