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국회와 국회의원 수준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지 않다. 국정감사 때가 가장 국회의원 자질과 역량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이 될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국회의 기능과 권능이 존중되고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마련했지만 의원 자질면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 뜻에 의한,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일컫는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국민을 무서워하기는커녕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들면서 당리당략만을 쫓는 후진성을 못 벗어나고 있는 실태가 여전하다. 면책특권을 빌미로 법망도 무력화 시키는 작태를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이민개혁법 개정 시위에 참가했다가 불법 도로점거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연행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대한민국 선량들 입지다. 깊어가는 가을에 한국민들은 국정감사에 임하고 있는 여야 국회상황을 똑똑히 지켜봤다. 산적한 민생대책을 추궁하는 여야의원들의 칼날 같은 질문내용과, 답변에 쩔쩔매는 정부 당국자들, 또 불려나온 참고인이나 증인들에 대한 심도 있고 전문성 갖춘 심문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지켜본 20일간의 국정감사기일이었다.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 정한 ‘국정’의 개념은 의회의 입법 작용과 행정, 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을 뜻하며 ‘감사’는 국정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국정감사 기간이야 말로 국회 존재가치의 정점으로 나타나는 시기다. 국민 관심이 소홀할 수 없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민간 기업에까지 미치는 경지다.

특히 새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였고, 여야모두 민생을 위한 감사를 약속했기 때문에 유권자들 기대가 자못 컸다. 때가 때인 만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새누리당의 소모적 정쟁에는 민생으로 대응하고, 민생·복지공약 포기에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겠다”고 말한 데 대한 신뢰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 모든 기대와 신뢰가 ‘국감’ 초장부터 무너져 내렸다.

중계방송을 의식해서 답변 기회 없이 질문만 해대고, 자료와 동떨어진 질문을 하고, 증인에게 인격모독 하는 막말에, 폭언까지, 저질 국회 자화상을 여실히 그려냈다. 민생은 말이 다였고 여야의원들끼리 정쟁의 힘자랑만 난무했다. 야당 주장대로 상시국감이 열리면 관련 부처나 관계자는 1년 내내 국정감사의 볼모가 돼야할 판이다.

국정감사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가 또 있다. 우리 국민들 눈에 공직자나 기업대표는 언제나 ‘갑’이었다. 그런 ‘갑’이 국회에 불려가서는 꼼짝없이 ‘을’이 돼서 하루 종일 붙들려 있다가 “아니요” 한마디 하고 나오는 모습이 너무 허탈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국정감사를 하겠다”던 정치판이 되레 ‘슈퍼 갑’ 노릇을 하는 국회 현장이었다.

많은 선진국들이 국정감사제도 없이 국회 각 소위에서 관련 부처 관리들이나 민간 관계자를 불러 문제를 추궁하고 제도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국회 대기 중인 피감기관 직원들 사이에 “그냥 버텨, 어차피 카메라 비출 때 한번 소리 지르고 국감 지나면 자료 달라고 했던 것도 까먹어”라는 대화가 오가는 사실을 이제 유권자들이 다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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